외롭지 않은 말 - 시인의 일상어사전
권혁웅 지음, 김수옥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기는 아직 언어를 배우지 않았다. 이것은 아기가 세사이분절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기 자신이 언어에 의해분절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기는 언어 이전의 살肉)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지만 거기에 어떤 설명도 덧붙일 수 없는 그런 살이다. 우리가 예쁘다, 매끄럽다, 부드럽다.
와 같은 말로 설명하려고 했던 원래의 그 살결 그대로 아기는있다. 하지만 어떤 언어도 아기의 그 예쁘고 매끄럽고 부드러운 살결을 형용할 수가 없다.

법이 허용하는 어른의 한도는 19세다. ‘17대1‘이 그 자신이 허물을 벗는 경계를 표현하는 말이라면 19금‘은 외부에서 부과한 사춘기의경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왜? 19도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는 18이 있다. 온갖 수가 합성된 수다. 이미 17을 넘었는데 다시 19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저 말이 욕이 될밖에 특툭 튀어나올밖에.

 이모는 정반대다. 삼촌이 부계라면 이모는 모계다. 삼촌이아버지나 장자와 권력 승계를 두고 다툰다면 이모는 어머니와 함께 소외된 이들의 연합을 이룬다. 어머니가 시어머니가되면 이모는 소외된 이들에게서도 다시 한 번 소외된다. 이모에게는 어떤 권력도 주어지지 않으며, 다만 자애로운 어머니의 역할만이 주어진다. 그녀는 그림자 어머니‘가 된다. 우리가 식당에서 이것 좀 치워달라고, 주문 좀 받으라고, 계산서가져오라고 이모를 부를 때마다, 우리는 칭얼대는 것이다. 엄마, 밥 줘. 엄마, 방 좀 치워줘.

 그런데 사실 본다는것은 보는 사람에게 속한 능력이 아니라 보이는 사람에게 속한 능력이다. 내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상을 보는 것이아니라 대상이 내 시선을 갈취해 가는 것이다. 그이가 나를끌고 간 게 아닌데도 나는 그이에게 끌린다. 누군가 그립다고할 때 쓰는 말 ‘눈에 밟힌다‘가 수동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별을 통보받은 연인이 그래도 수긍하지 않으면 이런 말이 이어진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더 좋은 사람 만나.‘ 자기와 상대를 저울에 올려놓고 쟀다는 얘기다. 그는 근수로 상대를 평가했다. "널 구속하고 싶지 않아. 욕심 부리지 않고 널놓아줄게." 그동안 상대를 우리에 가둬놓고 키웠다는 말이다.
이제는 방목하겠다는 거다. 만에 하나,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는 보험까지 들어두고, "널 오래 기억할게." 상대를 내 컬렉년에 추가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3차원의 사람이 2차원의 감옥에 갇힌다. 상대는 비교되고 추방되고 정리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