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 세력은 여성의 교육 기회 확대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맞섰다.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이끈 이들은 지적으로 뛰어난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지닌 지성의 능력을 확신하며 여성에게 불리한 환경에 반발하고 용감하고 당당하게, 결연히 떨쳐 일어났다. 이들 여성은 평판이 나빠졌고, 사회에서 소외 당하거나 사람들의 조롱을 받았으나 그보다 더 나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남성 중심의 기존 질서는 여성의 지적 해방과 기록된 글의 잠재적 전복 효과를 두려워했다.
세계 문학에서 최초로 이름을 알린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에 놀랄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엔헤두안나 Eulheduanna(기원전 2285~2250년) 공주 이전에도 글자를 적었던 서기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엔헤두안나는 처음으로 설형 문자판에 자기 이름을 적었으므로, 4300년 전에 생존했던 최초의 작가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녀는 수메르 세게를 통일했던 아카드 제국의 정복왕 사르곤의 딸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 귀족 혈통의 여인들은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을뿐만 아니라 춤과 음악, 노래를 비롯한 예술 교육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시는 특히 중요했고,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여사제, 선지자, 시인으로 종교 제의에 활발히 참여했다.
절세미인이었으며 기이한 삶을 살았다고 알려진 히파티아는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885년에 영국의 라파엘 전파 화가 찰스윌리엄 미첼 charles, William Mitchel(1854~1903년)은 극적인 자세를 취한 히파티아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 속에서 히파티아는 벌거벗고 제단 앞에 서 있다. (제단은 히파티아가 사원에서 살해되었음을 의미한다). 길게 흘러내리는 금발은그녀의 몸을 감싸며, 그녀의 시선은 지식과 과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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