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 나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야. 하루를 못 벌면그다음 하루는 굶는 인생이라고, 죽는 건 하나도 안 가여워.
사는 게, 살아 있다는 게 지랄맞은 거지."

"저기, 제가 한번 안아 드려도 될까요?"
".......?"
"아빠는 게가 어디 멀리 갔다 오면 꼭 그렇게 해 줬거든요저는 오늘 아빠를 대신해서 여기에 온 거고요."
".. 그럼, 그래 줄래요?"
되묻자, 문경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어 보이며 두 팔을 벌려나를 안았다. 문경의 숨결은 설탕처럼 달았고 내 등을 토닥이는 손바닥은 부드러웠으며 아빠를 찾아 주어 고맙다고 말하는목소리는 귓가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제야 나는 문경에게서그의 흔적을 온건히 발견한 것만 같았다.
문경에게 안긴 채, 나는 잠시 흐느꼈다.

벨기에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어요. 나 같은 아이들이 대개그렇듯, 나 역시 입양된 가정에서 늘 방황했고 합당한 애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장하는 내내 내가 누구인지 몰라 혼란스러웠고,
사실은 지금도 종종 그렇습니다. 입양은 버려진 나를 구원해 주었지만, 동시에 나의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박탈해 가기도 했으니까요. 벨기에에서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낄수록 당신이 더더욱 미워지더군요. 어쩌면 당신에게서 받은 사랑을 기억했기 때문에 당신으 용서하는 것이 더 힘들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복희 식당을 나와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며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장면을 외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상상으로빚어진 그 장면 속에서 죽은 딸을 끌어안고 있는 연희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하고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한순간에 희망이나 의욕을 잃은 사람은 그런 얼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딸의 피가 식고 근육이 경직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연희는 동 생을 잃은 순간의 고통을 떠올렸을 테고 악착같이 생명을 앗 아 가는 자신의 삶에 모든 전의를 상실했을 것이다. 그날부터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자기 삶을 향한 환멸 어린 항복……….

철로가 불확실해지자, 순진하게 악하다는생모에 대한 단정도 무의미해졌다. 암흑 속의 여자, 까만 봉지에 봉합된 한 생애,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그 무덤조차 알려지지 않을 사람, 나는 이제 그녀에 대해 그 무엇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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