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복희 곁에 오래 머물 자격도 없었다. 객관적으로 나는, 복희 식당에서 단 세 번 식사를 한 적이 있는 손님일 뿐이었다. 그 이름조차 잘못 알고 있었던, 그녀의 삶에서는 그저 지나가는 배역……….

조심스럽게 옆으로 돌아누우며 활처럼 몸을 안으로 만 채두 팔로 배를 감쌌다. 몸 구석구석을 죄던 나사가 한꺼번에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살아 있다는 너의 신호, 세계를 향한 노크,
내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건네는 작은몸의 언어,
첫 태동이었다.

복희에게그 식당은 직장이었고, 동시에 일생을 통과하여 당도한 혼자만의 거주지였다. 노동과 재산, 시간을 모두 쏟아 부은 그 식당에 복희라는 이름을 새긴 행위도 살아 있다는 발신의 의미였을까. 복희의 살아 있음, 내게는 복희지만 공식적으로는 추연희인 그녀에게는 그 행위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방식이었던가. 그것으로 그녀는 고단한 삶을 보상받았을까.

정우식 기관사는 5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최창룡씨는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배반하는 강렬한 추위를 느꼈다. 어깨가 저절로 안으로 말렸고 기침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내 외로움을 대신 연기할 가상의 배우가 필요했다. 여름의 한가운데서 서서히 결빙되어가는 상상 속 배우에게 외로움을 투사하려 했지만, 이번엔 그런 식의 전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때때로 습관은 뜻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복희는 나와 넘버 원 닮았다는 그 아이에게 고맙고도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그 말의 속성을 잘 안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은 자신의아이를 입양 보낸 부모들이 늘어놓는 가장 흔한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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