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다, 에브리, 에브리……. 럭키하고 또 럭키한 그녀가 선택한 단어들에는 체온이 있었고, 그제야 나는 내가 고향에 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이틀 전 밤, 서울에서의 첫날,
나는 그렇게 복희를 만났다.

좌중을 압도하는 그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다가 테이블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피가 몰리도록 있는 힘껏 냅킨을 쥐고 있던 그의 손을 보게 되었다.
애쓰고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 그에게는 손이 신체의 말단기관이 아니라 내면의 모양을 추출하여 가시화하는 독립된 물질 같기만 했다. 그와 연인으로 만나는 동안, 실제로 나는 그의 표정이나 말투보다 손의 상태를 더 예민하게 살폈다.

아현은 오래전 애고개로 불렸다가 지명이 한자화되면서 비슷한 발음인 아현 - 아현은 언덕(阿)과 고개()를 뜻하는 한자로 조합된 단어였다. —— 으로 바뀐 경우라고했다. 한때의 왕국인 조선에서는 시체가 생기면 무조건 사대.
문 밖으로 내보냈는데 애고개, 그러니까 아현은 주로 아이들.
을 묻었던 매립지라는 설명을 나는 천천히 읽었다. 애기 무덤
들이 즐비했던 곳, 나는 서울에서 가장 슬픈 의미를 갖고 있는행정 구역에서 1년 동안 문주로 살았던 셈이다.

 게스트 하우스 밖으로 나온 순간, 복희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노파가 그 버려진 의자에 앉아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고 있는 게 보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생애를 다 살아 버린미래의 나 자신과 마주친 듯, 순간 나른한 쓸쓸함이 밀려왔다. 골목을 빠져나오는 동안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지만 노파는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노파가 꿈에서 깨어나면 골목과골목의 집들이 모두 먼지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자,
그 골목이 현생의 무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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