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유래는 두 가지네요. 하나는 이곳에 이태원이라는 역원(驛院)이 있었는데 그때의 이름이 지금까지 쭉 내려왔다는 거예요. 역원 이름이 이태(梨泰)인 이유는 여기에 큰 배밭이 있어서였고요. 다른 하나는 조선이 전쟁을 겪을 때마다.
겁탈당한 여자들이 이 동네에서 아이를 낳고 모여 살았는데,
사람들이 그들을 이타인(異他人)으로 불렀다네요. 그 이타인에서 이태원이 유래됐다는 거죠."  "두 번째 설이 더 그럴싸하네. 이태원엔 미군도 있고 외국인 이랑 실향민도 많이 살고, 게이 바랑 무슬림 식당도 흔하잖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노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관성이 되어 버린 외로움과 세상을향한 차가운 분노, 그런 것을 꾸부정하게 굽은 몸과 탁한 빛의얼굴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죄를 모른다는 건, 그 순진함 때문에 언제라도 더큰 악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녀는 나를 낳아 키웠지만, 동시에 철로에 버린 사람이었다. 자신의 딸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무심한 악이 철로라는 공간에는 함의되어있는 것이다. 

문이 열렸을 때, 그리고 그곳엔 당연히 낭떠러지가 아니라 계단이 있었다. 멀리 보이는 오르막길 아래로는 불빛이 가득했고 조명을 밝힌 남산 타워도 한눈에 들어왔다. 정전은 높은 지대의 집들에만 찾아온, 일종의 가난한 천사인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복희는 웃었다. 웃을때 복희는 더 이상 외로움과 분노를 체득한 노년의 표본 같지 는 않았지만, 대신 쓸쓸해 보였다. 끊임없이 내벽에 상처를 덧 내며 시간과 함께 공처럼 굴려 왔을 어떤 마음이 인간의 얼굴 로 빚어진다면 꼭 그녀처럼 보이지 않을까,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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