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 사피 선생은 시몬느에게 앞으로 커서 무슨 일을 하고 싶 으냐고 물었다. 시몬느가 제 자신도 기억 못할 정도로 여러 가지를주워대자 사피 선생은 시몬느에게 일러주었다. "시몬드야, 나무는 키만 크게 자라서는 안 된단다. 이렇게 옆으로도 자라야 해요." 그러면서 사피 선생은 두 손을 힘껏 옆으로 벌려 보였다. 시몬드는 말년에 "나무는 뿌리가 아니라 꼭대기부터 시든다." "높이 올라만가려고 하는 자에게는 잎과 열매가 에너지의 낭비로 보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참으로 현명했던 덕분에 시몬느는 자신의 흥미를 끄는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시몬느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정치학이었다.
어떤 학생은 이런 시몬느를 공산주의자라고 놀렸다. 그러면 시몬느는
"아니, 난 볼셰비키야"라고 응수하곤 했다. 그 나이에 시몬느가 볼세비키란 말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때부터벌써 "버림받은 노동자들" 의 편에 서서 모든 것을 생각했다는 것만은확실히 알 수 있다. 얼마 후에 베르사이유 조약이 체결되었을 때에도시몬느는 이 조약을 "이미 패배한 적의 숨통을 누르는 행위"로 여겨,
프랑스에 대한 수치심과 약자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열렬히 간직해온 자신의 애국심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도 했다. 아직도 어린 시몬느의 가슴 속에서는 점차 모든 인간은 평등해야 된다는혁명적인 사고가 움트고 있었다.



때로는 지하철을 타고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시몬느는 지하철을타는 노동자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노동자들을 좋아하는건 정의감 때문만이 아니야. 난 본능적으로 그들이 좋아. 노동자들은부르조아보다 훨씬 아름답거든." 시몬느는 아름다움에 매우 민감했으며 부르조아들이 지나친 미의식 때문에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되는것을 역겨워했다.

시몬느는 누구에게나 신념과 생활 태도 사이에 차이가 잏어서는안 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우리들이 이 문제에 관해 이아기했을때 그녀는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그 차이 자체가 아니라 현실과타협한다는 것이야" 라고 말했다.

시몬드는 정치적인 사고와 철학적인 사고를 가능한 한 서로 접근시키려고 노력했다. "법의 안티모니에 관해서"라는 글에서 시몬느는법, 즉 사회 정의를 수직선에 비유했다. 자연에 수직선이 있듯이 정의는 인간 정신의 산물이다. 그러나 법은 감각적인 직관에 서, 독립된정신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법은 원칙적으로 권력이나 실질적인 행동과는 다른 것이지만, 세속적인 권력이나 실질적인 행동으로부터완전히 독립되어 있지는 않다. 이 때문에 시몬느는 이 글의 앞에 "법은권력에 의해 규정된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했다. 시몬느는 법은권력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의해 규정된다고 생각했다.
노동의 뒷받침을 받지 않는 법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또한 순수한관념이나 권력에만 의존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시행되지 못하는 법도역시 무의미한 것이다. 시몬느의 이러한 법 개념은 마르크스의 법개념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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