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사가들은 1501년 이전에 유럽에서 인쇄된 책을 인큐내뷸러(incu-nabula)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는 ‘요람‘을 일컫는 라틴어로 인쇄코덱스의 요람기에 빗댄 표현이다. 

인큐내뷸러는 우리에게 친숙한 책 형식인 ‘인쇄 코덱스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량 생산되는 책처럼 균일하지는 않았다. 근대 초기의 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책‘(book)과 ‘책권(冊卷, book copy)을 구분한다. 인쇄기를 한 번 돌려 찍어낸 각각의 코덱스마다 고유한 유통, 내력, 물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책을 보관할 때 책등이 안쪽을 보도록 넣었기에, 독자가 책을 찾을 수 있도록 책배를 문양이나 금박, 정교한그림으로 장식하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는 책등에 저자 이름과 책 제목이 박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것은 16세기 중엽 들어 독자가 장서가로 바뀌고 서재를 확장하는 것이지성과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면서 책등이 바깥을 보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다.

우리는자신이 책 속으로 사라졌다가 독서 경험에 의해 변화된 채 몇시간 뒤에 다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식자들은 이 탈육(脫肉)의 로맨스를 일종의 식물인간 상태로 묘사되는 텔레비전 시청의 수동성과 대조한다. 

 18세기에 잉글랜드의 출판업자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식 재산권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저작권 논쟁은 ‘책‘을생각하는 관점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책을 인쇄하는 것뿐아니라 번역하고 다른 매체에 맞게 각색할 수 있게 되자 권리는 사물로서의 책이 아니라 그 책에 담긴 텍스트로 넘어갔다.마침내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인 앤여왕법(1709)은 작품의 소유권을 저자에게 부여함으로써 내용이 형식보다 우위에 있음을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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