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고독한 날 시를 써요 천장에 누워 시를 써
요 내 코를 먹으면서 내 눈알을 귤처럼 까먹으며 시
를 써요 면도칼을 먹으며 시를 써요 병든 당신을 생
각하며 시를 써요 항구에서 도시에서 허공에서 쓸
쓸히 죽어가는 짐승들과 인간과 행성들을 생각하며
시를 써요 외롭고 고독한 날 사물들은 언어들은 나
의 무릎쯤에서 죽어가고 나는 무릎으로 시를 써요
무릎에서 쏟아져 나오는 검은 파도 검은 물고기로
시를 써요 검은 새 검은 피로 시를 써요 밤늦도록 방바닥에서 아파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시를 써요 검은잉크병 검은 관으로 변해가는 나를 내려다보며 시를 써요 불면에 시달리며 신음하는 시를 써요 천장에누워 시를 써요 아니 천장이 시를 써요 천장이 내무릎으로 시를 써요.

(천장에 누워 시를 써요. 중)

이상한 질문

19시 26분 37초에
지금은 19시 26분 37초다.
라고 써놓고 보니지금은 19시 26분 50초다 그러니
지금은 19시 26분 37초다는 거짓이고
지금은 19시 26분 50초다는 참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지금은 19시 27분 15초다.
그러니 지금은 없다.
지금은 없다고 써놓고 보니
지금은 19시 27분 29초다.
그러니 지금은 있다.
그러니 지금은 있다고 써놓고 보니
지금은 19시 27분 44초다.
그러니 지금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런데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한 건 없다.
그런데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라는 말은 있다.
지금은 없다( )
지금은 있다( )
틀린 말에 ○표를 하시오

(전문)

거울과 거울이 마주 보고 있다.
나는 거울과 거울 사이로 들어간다.
그에게 하얀 꽃을 내밀며 휴전을 신청한다.
거울 속엔 거울 속의 그가 9인으로 복제되고 있다.
모두 다 등을 돌린 채 나를 모른다고 한다.


거울과의 싸움에 휴전은 없다.

(거울과의 싸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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