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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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내 눈은 그곳에 있었고
과거에도 너의 눈은 내 눈 속에 있어서
우리의 여관인 자연은 우리들의 눈으로
땅 밑에 물 밑에 어두운 등불을 켜두었다.
컴컴한 곳에서 아주 작은 빛이 나올 때
너의 눈빛 그 속에 나는 있다.
미약한 약속의 생이었다. 
실핏줄처럼 가는 약속의 등불이었다.

(너의 눈 속에 나는 있다. 중에서)

사막을 건너본 달 같은 바람의 맛
울 수 없었던 나날을 숨죽여 보냈던 파꽃의 맛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을 본 양
나의 눈썹은 파르르 떨렸네

늦은 저녁이었어
꽃다발을 보내기에도
누군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기에도 너무 늦은 저녁
찬 물새가 툭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시간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중에서)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차 소리가 났다 잎새들이 바깥에서 지고 있었다.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단 한 번도 뿌리와 소통을 해보지 않은 나뭇잎

을 수도 없었다 울기에는 너무 낡은 정열이었다

뿌리에서 떠나 다시 뿌리를 덮어주는 나뭇잎

(전문)

웃을 수도 없었다 웃기에는 너무 오랜 정열이었다.

사막에 대해서 아는 바가 조금 있다. 아마도 작열하는 미
래 황폐한 미래를 위해 이곳은 다른 곳보다 망각이 먼저 오
고 가장 오래 머물고 망각의 혀를 사랑하여 느린 태양의 행
진을 즐긴다. 오직 내비게이션만을 믿고 달리는 태양이 지
배하는 사막의 나날을 위해 록커들이 불렀던 노래를 심장에등꽃처럼 단 턴테이블을 소금벽이 있는 동굴에 걸어두고 싶다. 어느 타임머신이 저 노래를 들었으면 한다. 그 노래는
오직 타임머신만의 미래이므로,


(사막에 그린 얼굴 2008. 중에서)

여기는 이국의 수도 비가 온 지 십 년도 넘어 되었다네
이 도시의 연인들은 헤어진 다음에야 결혼하지
이 도시의 제사장은 아들을 의해 물속으로 들어가고
제 시체가 물에 떠오를 때까지 기다린다네
푸른 구역에는 대추야자나무들 거꾸로 서 있고
그들은 무지, 무직, 라고 아비의 시체는 말하네 
아무리 내가 저 몸을 이 생으로 삼고 있지만 저 몸이 죽은 후
 물에 떠오를지 아닐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하여 
이국의 수도에서 제사장은 언제나 유죄

(여기는 이국의 수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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