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도시는 누군가가 오래된 잊힘에서 그 도시를 불러내면서 새롭게 태어난다. 도시로서는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으나 폐허 도시라는 이름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미 그리스 건축을 공부했고 동방 폐허도시 여러 곳을 발굴한 적이 있던 콜데바이는 바빌론이라는 거대한 고대 도시를 폐허에서 이렇게 불러낸다. 발굴을 하는 자에게폐허 도시는 잊힌 도시가 아니다. 자신의 환상 속에서 움직이고자신을 구속하는 살아 있는 현재이다.
기록자가 절대 화자인 고대인들의 글쓰기는 강력한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 기록자가 사실 전부를 지배하고 있는이 태도에는 글쓰기, 라는 것이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고대적인 인식에서 비롯되며 그 주술의 힘을 타인하고 나누지 않으려는 혼자서 말하는 자‘ 를 수없이 태어나게 했다.
봄빛이 아련한 그 바닷속에는 새 바다풀이 돋아나고있었다. 할머니는 바닷빛을 한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러고서 문득나를 바라보았다. "니 그, 바다 때깔, 보나, 니가 글을 쓸 줄 알게 되몬 그 때깔 이바구 먼저 써다고." 나는 그 순간 할머니가 보던 바닷빛을 내 가슴에 끌어넣은 것같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손으로 기록하지 못하는 아직 고대에 머물러 있던 할머니가 바라보던 바닷빛을, 바닷빛을 그토록 들여다보는 삶의 한순간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고고학적인 사실, 이라는 거창한 말 속에는 발굴의 우연이라는작은 괄호가 언제나 들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유적터는 다른 유적터보다 많은 유물을 안고 있으며 또 어떤 유적터는 자신의 과거를 발설하는 아무런 유물을 전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찬란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발견되지 않은 과거는 고고학적인 사실로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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