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개의 시산문과 희곡.
머리가 복잡할 때는 수학관련 책을 읽거나 수능 기출문제집 같은 걸 푼다. 오래 집중하고 몰입하면 개운하게 정돈된다.
신혼때는 부부싸움을 하다 감정이 격해지면 수학의 정석을 들고 방에 들어가 밤새 풀었다. 그리고 화해했다.
함기석은 수학적 상상력이 대단한 작가다.
기교가 아닌 사유가 보여서 늘 가까이 두고 읽는다.
절판되었던 국어선생은 달팽이가 복간되었다니 조만간 읽어야겠다.
태풍 때운에 창밖이 소란하다.
바닷가라 바람은 더 거세고..
고독한 대화속 수학적 상상력에 빠져버려야겠다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에서 발견한 개별성을 일반성으로 보편화시킬 수 있으려면 수학자는 어떤 예술가보다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이어야만 한다. 특히 현대의 수학이 집중하고 있는 고차원 시공간 속으로 들어가려면 첨예하고 다채로운상상력이 요구된다. 일반인들이 수학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이유는수학이 다루는 대상과 대상을 표현하는 기호 자체가 추상적이기때문이기도 하지만 수학이 고도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라는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시를 정의하지 못한다. 나는 현실을 정의하지 못한다. 나는 나를 정의하지 못한다. 정의定義, definition는 용어의 뜻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한 문장을 뜻한다. 나는 지금 나를 진술하고 당신은 읽고 우리는 함께 세계에 갇혀 있다. 과연 이 문장은 참인가 거짓인가. 당신이 나를 읽어나갈 때 당신도 나도 계속 사라진다. 당신은 이미 좌측으로 사라진 없는 문장이다. 당신도 영원히 정의되지 않는다. 이것을 연속적으로 시각화하면 남는 것은 백지다. 백지는 무수한 당신이 참수된 광대한 설원이자 황무지고 처형지다. 나는 시인의 비논리적인 상처투성이 문장들이 그들의 삶이 처한 현실의 무수한 국면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누구도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정할 수 없다. 그 내용이 참인 지 거짓인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을 수학에서는 명제命題, proposition라고 한다.
(정의. 중에서)
시에서 유일한 리얼리티는 말 그 자체다. 그러나 말은 안개고양파고 그림자다. 일종의 유령이자 환영이다. 말은 사방으로 분산되면서 동시에 사방에서 실종되고 증발한다. 시에서 유일한 리얼리티는 말 그 자체에 내재된 무無와 침묵이다. 이 침묵에서 최초의음이 흘러나오고 리듬이 발생하지만, 음은 곧 우주 저편으로 긴 메 아리를 남기며 사라진다. 그 소멸의 끝자리에 누군가 서 있다. 시 인이다.
(리얼리티. 중에서)
나에게 시는 물질이면서 반물질이고, 나는 나라는 물질의 전생과 내세 사이에 놓인 하나의 점 좌표다. 점은 수학적으로 둥근 모양이지만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존재다. 크기가 없고 위치만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정한 점과 점사이에 세계가 있고 무한이 있다. 나라는 외딴 점 곁에 당신이라는외딴 점이 있다. 그 사이에 광대한 무한의 바다가 있다. 그 물결을타고 일렁일렁 표류중인 작은 조각배, 그것이 시다.
(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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