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의 ‘분신‘은 ‘돌이킬 수 없는 앎의 증언이다.
전태일의 분신은 자신의 몸을 불태움으로써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에게그 어떤 자리도 허락하지 않았던 이 세상에 그가 새긴, 돌이킬 수 없는마지막 문장‘이자 노동자들로 하여금 글을 쓰도록 만든 도화선이 된 ‘첫문장‘ 이었다.
독학자는 불타오르는 사람이다. 체계적인 기록을 남길 수는 없을지라도 독학자는 불이 아닌 ‘타오름‘이라는 내재된 힘을 발명하는 이다. 독학자라는 이름에 소유권이 없다. 분할된 몫의 자리를 불태우며 ‘서로가용해되어 있는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 독학자는 아무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일 수 있는 익명의 자리로 향한다. 전태일의 ‘인간 선언‘은 이름이 없는 이들의 익명성으로부터 발화한 것이었다.
‘강성 노조‘니 ‘귀족 노조‘니 하는 비난이 많지만, 왜 그들이 강성‘이될 수밖에 없는지를 한번만 돌아보면 그런 말은 하기 어렵다. 그중 누가 ‘귀족‘ 인가? 어느 나라 ‘귀족‘이 과로사로 죽을 만큼 초과노동하고, 정규직 잘렸다고 조끼 입고 한데서 자며 빨갱이‘ 누명을 쓰고, 그러다 자살하는가?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로는 부족하다. 이미 학벌과 부를 위한 기회가 불평등하게 체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기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정(=시험)의 공정함은 환상일 뿐이다. 결과의정의는 저절로 달성되지 않는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고교 등급화를폐지하고,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또한 삶의 어느 단계에서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찾고 국가는 그것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김진숙의 독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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