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을유사상고전
묵자 지음, 최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묵자.

묵적이라고도 불리운 춘추전국 초기의 사상가이자 실천가이다.

공맹의 도, 혹은 제자백가의 사상들을 어설프게나마 듣고 자랐다. 특히나 유교를 국교로 숭상하던 조선시대를 지나며 우리나라는 신분질서와 남존여비의 사상이 깊이 박혀있고 그것은 자본주의와 만나 고스란히 한국적 계급구조를 갖게 했다.

노동자와 여성이 천시(조금 거친 표현이겠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되었고, 당연시 되었다.

몸을 쓰며 사는 것이 머리를(자본을 움켜쥐고) 쓰며 사는 것보다 낮은 일이라 생각했고, 남자가 하는 일을 여자가 막아서면 안되었다.

상처가 오래되면 곪고 터져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많은 곳에서 모순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겉보기엔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나라는 사방에 상처투성이다. 아무말도 못하고 속으로 삭이던 시대를 건너 조금 숨이 터지게 되자 너도 나도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건 무엇보다 큰 상처이다. 노동자가, 여성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치게 된 그 시작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체제의 문제, 생산구조의 문제, 이념의 문제, 부의 재분배문제..다양한 문제들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도 들여다보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갈증해소법이었을 수 있다.

그러다 만나게 된 책이 '묵자'이다.

묵자의 사상은 다양하게 출간되었다. 묵자의 사상을 연구하고 해석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몇권의 책을 읽고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건 해석한 이의 주장들 때문이었을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했던 어떤 주제의식을 갖고 했던 간에 저자의 사상과 주장이 묵자의 사상을 겉옷처럼 둘렀을 뿐이었다.

날것 그래도, 정말 묵자의 말은 무엇이었을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을유문화사의 '묵자'

묵자와 그의 제자들이 썼다는 71편 중 망실된 것들을 제외하고 53편이 실렸다.

묵자의 학설에 대한 강령과 입론의 근거와 표준이 되는 것부터 묵자 10론이라 불리우는 부분 치세와 전쟁에 대한 이야기들이 원문과 해석본으로 정리되어있다.

당시 혼란스러웠던 주변국들의 정세와 그것과 연관된 이야기들을 근거로 하나씩 짚어가는 묵자의 설법(?)은 쉽고 자연스럽다.

그의 출신이 귀족이나 학자의 집안 출신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요즘의 말로 하면 노동자 하층민 출신이어서인지도 모른다.

반복하고 다시 반복하여 이야기 하는 묵자의 진심이 읽히기도 한다.

쉽지 않은 글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상을 몇권의 책으로 이해하고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다.

그럼에도 갈증이 조금은 해소된다고 느끼게 되는 건 어떤 해설도 없이 고스란히 적혀있는 묵자와 그의 제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해석하고 깨우치고 받아들이는 건 읽는 이의 몫이라고 열어두는 것 같아서 말이다.

묵자의 방식이지 않을까?



천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일반적인 도서의 판형보다 조금 좁다고 느껴지는 형태인데 두껍다.

벽돌의 모양 그대로다. 두꺼운 책을 벽돌책이라 우스개 소리로 말하곤 하는데 딱 벽돌책이다. 그러다보니 읽는 것이 쉽지 않아 분철을 했다. 세부분으로 나누고 보니 좁은 판형 덕분에 손에 딱 잡히는 것이 좋다.



동양의 마르크스라고도 불렸다는 묵자를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요즘의 세태와 다소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건 부수적인 문제다.

인간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읽히는 것 같다. 겸애라고도 하는 ..

원문과 해석, 깨알같이 달린 주석들이 만든이들이 고생했겠다.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 이것은 옛날 하느님과 귀신이 나라와 도읍을 건설하여

통치자를 세운 것은

그들에게 높은 작위와

후한 봉록을 주어

부귀하고 음일하게 지내도록 한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만백성의 이익을 일으키고 피해를 없애며,

가난하고 모자라는 사람들을 부유하게 하며,

위태로운 것을 안정되게 하고 혼란스러운 것을 다스리게 한 것임을 말한다." (p 189 . 상동 중 제 12편)



여기에 밑줄을 그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외면하고 나라를 외면하는 소위 국정을 맡은 이들과, 자신의 주머니만 불린다면 노동자들을 소모품처럼 생각하는 자본가들, 치욕적인 갑질. 그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밑줄을 그었다. 사람을 존중하는 것, 노동하는 손을 귀하게 여기는 것. 여기에 묵자의 일갈이 시작되는 지점이 있는지도 모를 것 같아서 말이다.



종이의 질이 별로이고, 분철하는 수고를 하더라도 읽어봄직한 책이다.

꾸역꾸역 할말이 많은데, 어떤말부터 해야할지 몰라 고르고 있을 때, '그러니까 이 사람이 하려는 말은..'이라며 누가 사이다처럼 내 속을 들여다본것처럼 얘기해 주는 느낌.

골 터지는 의도와 학설이 뒤섞인 책이 아니라서 좋았다.

먼 시대를 건너 온 사람이 조근조근 이야기 해주는 것 같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