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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일본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온천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 많다. 또 왠만한 애니메이션에는 목욕씬이나 온천씬이 꼭 나온다. 선정적인 장면을 위한 요소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온천이 친숙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도 언젠가부터 눈내리는 겨울밤 노천에서의 온천욕이 로망(?)이 되었다. 꼭 밤이여야 하고, 꼭 눈이 와야 하며, 꼭 노천이어야 한다. 이거 일애니를 너무 많이 봤나부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곳이 있으려나?? 눈내리는 밤의 노천온천이라면 일본의 북해도 쪽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제목을 보고 쫌 웃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다소 유치한 듯한 문구 때문이라기보다 왠지 요시다 슈이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요샌 읽는 책 제목마다 말할 꺼리가 생기는지 모르겠다.;;)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은 다소 차갑고 시니컬하며,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 있다. 그런데 왠 온천?? 게다가 첫사랑??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이 책을 읽었다. 역시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첫사랑 온천은 제목만큼 닭살스럽거나 풋풋하지 않았다. 여러 주인공의 사연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 느낌이 흔히 생각하는 사랑이 아니었다. 첫사랑 온천이란 제목의 단편은 오히려 사랑을 잃는 이야기였다.(이 책에는 첫사랑 온천, 흰눈 온천, 망설임의 온천, 바람이 불어오는 온천, 순정 온천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각 작품에는 저마다 사연을 지닌 10대, 20대, 30대 등의 다섯 커플이 등장한다. 결별, 불륜, 분열, 사랑, 약속 등 각각의 사연을 위해 온천을 찾은 커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 커플들의 다섯가지 다른 사연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치 하나의 사랑의 과정을 보여 주는 것 같다. 풋풋한 10대의 미래를 약속하는 순정적 사랑에서 시작해서 20대, 30대의 망설임과 분열, 불륜을 다룬 이야기를 지나 '첫사랑 온천'이란 제목의 단편에서는 결국 사랑을 잃는다. 그 단편의 순서가 사랑을 잃는 '첫사랑 온천'이야기가 맨 처음 나오고 10대의 풋풋한 사랑을 약속하는 '순정 온천'이 맨 나중 나온다는 것이 묘한 특징이었다. 마치 사랑의 과정을 거꾸러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10대의 청소년 남녀가 부모님 몰래 온천 여행을 가서 앞날의 사랑을 약속하는 '순정 온천'의 이야기가 꽤 풋풋하지만, 그 느낌에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건 '첫사랑 온천'을 포함한 앞의 네가지 이야기를 먼저 읽고 난 다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요시다 슈이치'다운 느낌의 책이었다. 난 그런 그의 시니컬한 느낌이 좋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온천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조만간 날잡아서 가까운 도고 스파비스라도 다녀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