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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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라고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이 시작 문구만큼 꽤 감각적이다. (이 문장은 일본 근대 문학의 명문장으로 꼽힐 만큼 유명하단다.)
 

눈의 고장 니가타현.... 몇년 전 이곳에서 딱 하루를 머문 적이 있다. 이곳을 여행하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었고, 오사카에서부터 도쿄, 닛코를 올라오면서 니가타 공항의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지나쳐간 곳이었다. 때는 푹푹 찌는 한여름이라 눈 구경은 할 수 없었지만, 이곳이 겨울에는 눈이 무척 많이 내리는. 일본의 노벨 문학상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 들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란 작가는 들어보지도 못했고, 더군다나 설국이란 작품은 읽어보지도 않았던 그때는 그냥 '그런가부다...'라고 별생각없이 지나쳤었다.  한참 대도시를 여행하고 지나친 곳이라 한산하고 뻥뚫린 듯한 시골 풍경이 여느 우리나라 지방의 농가와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었다. 저녁 늦게 온천장에서 하루밤을 지내며, 다다미방에서 유카타를 입고 한껏 널부러졌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니 문득, 그때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니가타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 책은 도쿄에 사는 어떤 남자가 이 니가타 고장의 한 온천장에 머물면서 느낀 정경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잠깐 그곳에 있었던 느낌과 같진 않겠지만, 같은 도시 뜨네기 여행자란 입장에서 약간의 공감대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실망이었다. 이 소설은 특별한 사건이나 줄거리가 없었다. 솔직히 끔찍하게 지루했다.

전형적인 도시 남자 시마무라가 이곳 시골에서 무위도식하며 여행겸 휴식을 취하는 중 두 여자를 알게 된다. 온천장에서 게이샤로 살아가는  관능적이고 정열적인 고마코와, 그녀와 대조적으로 순수하고 청순한 요코... 이 두 여자들은 시마무라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시마무라는 1년에 한번 고마코를 보러 온천장으로 간다. 하지만 시마무라는 이곳 시골에서 어떤 특별한 것들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한적한 시골 일상에 말상대 정도로면 족하다. 그래서 그를 향한 고마코의 정열도 그냥 지나쳐 버린다.

하지만 시마무마라 두 여인을 향한 우유부담함도, 기마무라를 향한 고마코의 정열도 모두 진실로 와닿지 않았다. 시마무라의 마음 속에 깔린 근본적인 이기심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꽤 불편했다. 특별한 줄거리도 없고 이 소설을 순전히 눈속 배경과 인물들의 심리묘사로 이해해야 하는데, 그게 별로 와닿지 않으니, 이 소설 자체가 그다지 매력있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결말 또한 황당하게 느껴질 뿐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일본의 근본적인 정서가 나와 많이 다르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이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란 것에 난 좌절할 뿐이다.;;

눈이란 배경은 어쩌면 도시인들의 고독과 차가움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마코의 정열도, 붉은 뺨도 모두 차가운 눈속에 묻혀버린다. 설경이 아름답게 묘사되기 보다는 숨막히는 고독이자, 허무로 의식된다. 눈처럼 내 머릿속도 그저 하얗고 멍할 뿐이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내공(?)을 쌓아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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