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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네 집 - 파리 리볼리가 59번지, 유쾌한 무법자들의 아틀리에
장은아 지음 / 시공사 / 2003년 4월
평점 :
유쾌한 무법자들의 아틀리에... 로베르네 집~
무법자, 불법 점거라하면 왠지 좋지 않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누군가가 빈 상점에 들어가 불법 점거를 하며, 어떤 일을 벌인다면 당장 경찰에 끌려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칭 KGB라 불리는 세명의 아티스트들(칼랙스, 가스파르, 브루노)이 파리 리볼리가 59번지의 어느 빈 상점을 불법점거하여 그들만의 자유로운 예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이름은 ’로베르네 집, 자유로운 전자’이다. (로베르란 프랑스에서 흔하디 흔한 남자 이름으로 원래부터 건물의 간판에 그 이름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자유로운 전자는 말그대로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을 나타낸다.
로베르네 집을 점거하고 있는 16명의 아티스트들은 모두 아마추어 예술가다. 예술을 전문적으로 배웠다기보단 스스로가 예술에 심취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마 타고난 예술적 끼가 있는 사람들이란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각자가 모두 개성이 철철 넘친다. 예술가로서의 이야기와 그들이 표현한 작품 이야기도 재밌지만 한사람한사람의 독특함에 책 읽는 일이 즐거워졌다. 개중에는 미술을 시작한지 8개월밖에 안돼는 신참내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예술을 공유하며 함께 각자의 개성과 열정을 발산하고 있었다. 또한, 이곳은 일반인들에게도 무료로 개방되어 그 자유로운 열정을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는 많았다. 우선 법적 건물주인 프랑스 정부는 이들을 불법점거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이들 예술에 대한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과 언론, 일부 정치인들의 도움으로 로베르네 집에 머무를 수 있는 유예기간이 길어졌고, 이들을 강제추방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점차 둔화되어 갔다. 결정적으로 좌파 출신이 파리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이들의 유예기간은 한층 더 길어졌다. 로베르네 집은 년간 4만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모이는 파리에서 세번째로 많은 관람객을 가진 명소가 되었다.
일반 미술관을 떠올려봤다. 어느 곳이나 비슷한 조명에 은은히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예술 작품 속에 아무리 자유로운 감각이 표현되어 있을지라도 왠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간극이 느껴진다. 예술은 더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어떤 고귀한 가치가 있는 성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예술의 수준높은 가치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리가 느껴져서는 쉽게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로베르네 집은 모든 규격화와 폐쇄성을 거부한다.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고, 다른 사람의 작품을 제작하는 것을 보며 내 작품을 구상하기도 한다. 작품을 만져볼 수도 있고 토론할 수도 있다. 창작과 전시, 관람과 소통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예술이고, 생활 속의 예술이며, 바로 내가 체험할 수 있는 현장의 예술이다. 프랑스의 예술적 감각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일반인들과의 소통문제에서부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예술은 어떻게 생각하면 무한한 자유와 열정의 표현이다. 규격화, 정형화된 틀 속에서는 그 자유의 표현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답답한 미술관... 자기만의 아틀리에에서 혼자 골몰하는 격리된 예술가....
우리나라도 열린 공간에서 자유로운 표현과 소통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문화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책을 통해 난 진정한 자유와 열정을 느꼈다. 또 굉장히 통쾌했다. 여러 미술책들을 읽었지만, 이 책만큼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드는 책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