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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 북유럽에서 만난 유쾌한 몽상가들
박수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스톡홀름, 오후 두시의 기억...제목이 왠지 낭만적이고 시적이다..
평일 오후 두시, 바로 지금쯤이면 한창 오후 업무가 바쁘게 돌아갈 때도 있지만 오늘 같이 식후 나른함으로 커피 한잔에 여유를 부릴 때도 있다. 특히 이런 봄날엔 그 나른함이 더욱 커진다. 또 창가로 햇빛이 짜릿하게 느껴질 때는 막 밖으로 뛰어 나가고 싶은 생각도 든다. 이곳에서의 오후 두시는 햇살의 나른함과 충만함이 교차하는 한낮의 절정이다. 하지만 스톡홀름, 그 이름만으로도 꽤 이질적인 그곳은 오후 두시에 이미 해가 넘어가고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단다. 북극 바로 아래에 위치한 스칸디나비아라 부르는 그곳에선 한밤 중에도 환한 백야현상도 있는 나라니, 한낮에 컴컴해진다고 해서 그리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평생 경험해 볼 수 없는 독특한 현상임에는 분명하다.
우리나라와는 아주 많이 다른 곳, 더군다나 아는이 하나 없는 낯선 곳을 일부러 찾아 떠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이 책의 작가인 박수영씨다. 철저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느끼고 싶었단다. 단순히 여행을 목적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새로운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더군다나 불혹의 사십을 넘긴 나이에...
이 책은 작가가 그곳에서 겪은 삼년간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제목처럼 그리 낭만적인 이야기도 아니었고, 이국의 정취에 대한 감상을 적은 것도 없었다. 솔직히 이 책이 여타 다른 여행에세이처럼 이국적 정취만을 이야기한 책이었다면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식상한 여행에세이는 이미 질릴만큼 읽었으니깐...
이 책속엔 낯선 곳에서 각기 다른 국가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과 교류하며 겪은 생생한 일상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 일상의 이야기 속엔 그들의 사랑, 고민, 정체성 등에 대한 갈등 등 여러 소소한 것들도 많았지만, 그 일상 하나하나에서 스웨덴의 사회와 더 나아가 외국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 사회의 실상을 통찰력 있게 짚어내고 있었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즐거움은 바로 이런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사회, 역사, 문화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와 관점이다. 어찌보면 일상 이야기만으로 자칫 가벼워질 수 있고, 사회, 역사 이야기로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끌어내고, 그것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여러가지 생각해볼 꺼리를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스웨덴 사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회적 약자나 이방인들을 대하는 그들의 '평등'이라는 정책 모토였다. 소수의 의견도 존중하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그저 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잘 실현되고 있었다. 외국인인 작가조차 스웨덴에 3년간 체류하면서 한번도 위축되거나 차별받는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단다. 사회주의나 사회복지라는 그들의 정책이 살짝 부러운 생각이 든다. 말로만 민주주의에 평등 운운하면서 돈있는자, 권력있는자가 보호받고 약자는 철저히 짓밟히고 무시되는 우리나라 사회의 지금 현실이 너무 속쓰렸다.
또 작가가 역사학도인만큼 우리나라와 세계를 아우르는 역사적 통찰의 시각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근대화를 먼저 시작한 일본과 우리의 역사도 되짚어보기도 했고, 강의실에서 만난 독일과 일본 지식인의 시각을 통해 전쟁 후 그들이 세계를 보는 시각과 관점의 차이, 그리고 아직도 끊임없이 불거저 나오는 인종 이데올로기 문제까지도 이야기한다.
이 책을 통해 스웨덴 사회의 현실을 여러가지로 알게 되었다.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야기기에 더욱 생생하게 와닿았다. 또 단순히 스웨덴에 가고싶다, 스톡홀름을 여행하고 싶다는 차원을 넘어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더욱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오후 두시, 난 이 책과 함께 이런저런 잡생각으로 허튼 오후의 시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