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여행
크리스토퍼 듀드니 지음, 연진희 외 옮김 / 예원미디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 온 내게 밤이 주는 의미는 그다지 크지 않다. 잠이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오후 10시가 지날 무렵이면 슬슬 졸음이 오고, 깨어있으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스르르 감기는 눈을 억제할 수 없다. 때론 재밌는 책에 빠져 밤을 지샐 때도 있고, 악몽에 시달려 밤잠을 설칠 때도 있지만, 나를 둘러싼 밤의 대부분의 시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만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절반의 시간이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잠을 잔다. 밤은 낮을 준비하기 위한 신체적 충전 시간이다. 그 시간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 하지만 인생의 절반을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력하게 지나가게 하기엔 아쉬운 점이 많다. 작가 듀드니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매일 무의식적으로 넘기는 밤의 세계를 여러 방면으로 소개한다. 해가 서서히 질 무렵인 오후 6시부터 해가 뜨기 시작하는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시간 단위로 펼쳐지는 밤의 무대는 우리가 미쳐 인식하지 못했던 아름답고 신비한 또 다른 세계였다. 
 

이 책은 일몰에서부터 오로라, 극광, 별 달 등 단순히 밤을 묘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넘어서 신화, 역사, 과학, 의학, 문화, 사회, 심리학 등 밤에 대한 폭넓은 분야를 모두 아우르고 있었다. 예를 들면 신화와 과학적으로 분석한 밤의 기원, 각종 야행성 동물과 곤충들, 바닷속의 발광생물들, 밤에 어린이들을 잠들게 하기 위한 아동문학들, 불야성, 나이트클럽의 환상적인 밤문화, 세계 각국의 밤축제, 생득적 체내 시계, 꿈 등의 인체의 밤에 대한 원초적 감각, 흡혈귀, 늑대인간 등 밤의 불청객(?), 밤하늘에 대한 신화화 과학, 어둠을 찬미한 음악과 미술 ....등등 펼쳐진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우아~'라고 절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흥미있고 광범위하다. 하지만 이런 감탄사는 단순히 백과사전적 지식을 습득하였다는 쾌감에서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밤에 대한 지식의 나열을 넘어서 작가의 사색과 경험 그리고 나름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작가는 친근하고 서정적으로 그리고 때론 시처럼 감미롭게 들려준다. 때문에 작가가 일몰의 풍경을 묘사할 때, 별을 이야기할 때, 야상곡과 미술 작품을 이야기할 때, 나의 어렴풋한 기억을 끄집어 떠올릴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눈 아래 펼쳐진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분홍빛 일몰, 학생시절 운동장에 누워 바라보던 밤하늘, 늦은 밤 도서관 앞 벤츠에 앉아 듣던 풀벌레 소리, 남산 아래에서 내려다 보던 서울의 야경, 친구와 싸돌아다니던 북적대는 밤거리, 낯선 바닷가에서 새벽녘 술취해 미친듯이 소리지르며 밤하늘을 향해 터트렸던 폭죽......
 

또 밤이면 더욱 특별해지는 것들도 있다. 밤에 더 맛있는 라면맛, 자기 전에 들이키는 캔맥주, 밤에 들어야 더 감미로운 피아노 음악, 밤에 불끄고 봐야 더 실감나는 일애니, 야근시간에 해야 더 잘풀리는 업무....무심코 내 기억 속에 큰 의미 없이 지나칠 뻔 했던 기억들이 시처럼 하나둘씩 떠올랐다.

물론 밤의 이미지가 이렇게 낭만적이고 즐거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밤에 일하는 사람들, 수면장애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어둠을 틈타 행해지는 악행과 범죄들도 많다. 또, 작가는 빛공해, 환경 오염 등 진정한 밤의 의미를 훼손하는 현대의 과학의 양면성을 아쉽게 토로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밤이 주는 여러가지 의미와 다양한 지식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무한한 시공간의 한 지점 이곳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과 누구에게든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중요한 것은 그 시공간 속에서 어떤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인식의 차이에 따라 삶의 색깔과 질이 달라질 수 있다. 작가는 밤을 이야기하며,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제시해 준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잃어버렸던(?) 내 인생의 반이 갑자기 새로와졌다거나, 밤이 갑자기 특별하게 느껴진다 하는 것은 지나친 감정의 증폭(?)일 것이다. 하지만 무심코 흘려들었던 한밤중의 풀벌레 소리와  무심코 바라보던 내방 창문의 달빛이 조금은 더 친숙해질 것 같긴 하다. 또 내가 잠을 자고 있는 순간에도 세상은 활동하고, 계속해서 창조되고 있으며, 그런 밤을 보내고 오는 내일은 오늘과는 분명히 다른 하루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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