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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대지의 꿈 - 장 지글러, 서양의 원죄와 인간의 권리를 말하다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난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우린 여전히 일제 치하에 대한 치욕을 잊지 못한다. 시대가 많이 변하고 세계화 속에서 사회도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까지도 일본에 대한 껄끄러운 감정은 가시지 않았고, 가끔씩 걸고 넘어오는 우리 영토에 대한 일본의 도발에 치를 떤다. 꼭 국제 분쟁만이 아니더라도 일본에 대한 감정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하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관념은 상대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짙다. 이 모든 것이 과거의 불편한 역사에서 기억된 상처 때문일 것이다.
세계화 속에서 인도주의를 내세워 유엔의 이름으로 지구촌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오늘날, 남반구 국가들은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다. 왜 그럴까?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서양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는 그들로 하여금 서양에 대해 배타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과거 서구 열강의 오랜 식민지 지배에서 억압당하고 비참한 삶을 이어왔던 남반구 국가들이 과거의 뼈아픈 기억으로 인해 봉착한 오늘날의 세계 정세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는 남반구 사람들이 격었던 지난 3세기 동안 노예무역과 식민점령에서 오는 수탈과 학살의 역사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조명되어 있다. 그들의 제국주의 역사가 끝났다고 서구 열강의 지배 세력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세계화란 이름으로 서양 자본이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을 비롯, 다국적 민간 기업들로 구성된 용병들을 이끌고 신자유주의 이념을 무기삼아 강제적으로 침투해들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남반구 국가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빈곤과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들의 서양에 대한 증오는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남반구 국가들의 서양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는 오늘날 서양세력의 이중적 입장으로 더욱 깊어진다. 서양은 군비 축소, 인권, 핵무기 확산 방지, 세계적인 차원의 사회 정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이중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양은 자기네 편의에 맞게 '인도주의'라는 명목 하에 자신들의 경제이득을 챙기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글러는 서양을 정신분열증에 걸렸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그들의 이중성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2007년 세네갈을 방문한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의 강연은 그 '정신분열증'을 실감케 할 정도였다. 참회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식민 지배자들 가운 데는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의 연설은 갖은 기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남반구의 증오와 상처의 역사, 그리고 서양대국의 이중성... 이 모든 것들은 분명 세계를 진정으로 화합하고 인류의 화합과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 것일까?
지글러가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인권'과 '인류애'이다. 옳은 정의를 직시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인간 한사람 한사람이 세상을 바꾸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지글러는 2006년 처음으로 원주민 출신 대통령을 탄생시킨 볼리비아의 예를 들며 혁명과 연대로 새로운 희망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볼리비아 그들도 불행한 역사와 안타까운 빈곤의 현실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과거에 얽매이기보다 현실에 자포자기하기보다 좀더 현실적이고 발전적인 투쟁을 선택했다. 민족 정체성을 찾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희망의 꿈을 놓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과거의 역사도 떠올려봤다. 대등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식민지배 하에 있었던 굴욕이 어떤 것인지, 또 그 때문에 생성된 상대 나라에 대한 증오가 어떤 감정이겠는지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글을 늘여놓지 않아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것이 많다. 또 미국을 포함한 경제 대국이 우리나라에 정치 경제적으로 교묘하게 압박해 오는 여러가지 상황들을 겪었기에 서구 열강의 이중성이나 태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과거 기억의 미로에 갇혀있어서는 진정한 발전을 이뤄갈 수 없다. 또한 현실을 그냥 두고 보는 것도 그다지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과 투쟁하려는 노력이다. 그런 지성의 눈을 가진 개인개인들이 늘어갈 때 국가는 발전할 수 밖에 없다. 지글러가 강조하는 것도 결국 개인개인의 힘이다.
물론 현실은 생각처럼 그다지 녹록치 않고, 지글러가 말하는 그 노력과 투쟁이라는 것이 막연할 뿐, 구체적으로 확 ~ 다가오지는 않는다. 또한 우리나라의 입장이 과거 식민지배 하에 있었던 데에서 이젠 다른나라를 도와줄 수 있는 위치로 바뀌었다는 것이 모든 것이 더욱 막연해지는 큰 이유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느낀 것은 세계 경제의 흐름과 국제 정세, 그리고 그 가운데 소외받고 방치되는 극빈 국가들에 대해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빈곤으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 지구상에 우린 그들과도 공존하고 있다. 지구는 하나, 세계화..이런 말에만 익숙해져 있지, 정작 우리가 국제 변화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