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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화학자 - 과학의 프리즘으로 미술을 보다
전창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자의 입장에서 과학, 특히 화학의 눈으로 미술을 보다'라는 것은 화학을 공부하였고, 미술에 관심이 많은 나로선 굉장히 흥미를 끄는 요소였다. 기존의 몇 가지 미술 교양서를 읽긴 했지만 화학이라는 관점에서 쓰여진 책은 단 한권도 읽어보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 책의 저자는 나의 대선배님이시다. 어떤 식으로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실지 굉장히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기존 미술 교양서와 마찬가지로 화가의 일대기와 그들의 유명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미술 재료와 화학 반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에이크가 식물성 불포화지방산 아마인유를 이용하여 유화기법을 처음 완성한 것에서부터 명화가 오랜세월을 지나오면서 탈색되고 변색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화학적 근거를 든다.
다 빈치의 유명한 <최후의 만찬>이 심한 박락이 일어나고 색체가 떨어져나간 것은 물감을 잘못 혼합하여 화학반응이 일어난 결과이다. 인체, 동물, 식물을 포함해서 기계공학, 건축학, 기하학 등에 박식하여 과학자들에게 가장 친근한 다 빈치가 정작 화학 분야에 문외한이었다는 내용이 흥미로왔다. 램브란트의 유명한 <야경>은 원래 제목이 야경이 아니었지만 그림 전체가 어둡게 변하여 현재와 같은 제목이 붙은 것이다. 그림이 어둡게 변한 데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납을 포함한 안료과 황과 만나 검게 변색된 것이다. 밀레의 <만종 >역시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밝은 느낌이었을 것이라 추측되지만 산업혁명 당시 급격히 늘어난 아황산가스의 영향으로 그림 전체가 어둡게 변색된 것이다. 휘슬러는 흰색을 즐겨 사용하여 <흰 옷을 입은 여인> <흰색 교향곡> 등 순결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여럿 남겼지만 연백의 주성분인 납성분으로 인한 납중독으로 자신의 생명까지 빼앗겼다.
이런 이야기 외에 스팩트럼 과학을 이끌어낸 인상주의 작품과 포스터컬러의 기원 등 다양한 화가와 작품, 그리고 화풍과 구도에 대한 이야기까지 여러가지가 설명되어 있다. 그림을 감상하는 데 있어, 어떤 재료와 구도로 그려졌으며, 어떤 반응의 결과 오랜세월 후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고 보는 것도 유익한 일인 듯 싶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통해 인상깊게 생각했었던 것은 재료의 화학 반응이나 과학적 구도의 특이성 같은 내용이 아니었다. 그냥 과학을 향한, 아님 과학 자체를 보여주는 그림들이 더 매력적이었다. 다비드의 <라부아지에 부부의 초상> 이라든가 라이트의 <에어 펌프 실험> 끔찍해 보이지만 램브란트의 <해부학 강의> 같은 작품들은 기존 미술책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것이어서 한참 동안을 들여다봤다.
이 책은 과학과 예술의 접목이라는 시도로 그 내용면에 있어서는 상당히 주목할만하다. 하지만 그 연결고리가 조금 산만했고, 미술과 화학이라는 것은 그 재료면에서 무엇보다 꽤 연관성이 있다고 인정하지만, 그 내용만으로 이 책 전체를 구성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듯 싶다. 약간의 내용을 제외하곤 일반 미술 에세이에 나와있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차라리 과학과 관련된 여러 유화 작품들을 실어줬으면 개인적인 입장으로선 더 즐거웠을 것 같다. 작품이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만큼 과거의 어떤 실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꽤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