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밑에 사는 여자
마쿠스 오르츠 지음, 김요한 옮김 / 살림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화요일마다 침대 밑에 들어가 산다고??

 

오 ~ 이거 제목만으로도  굉장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장에 이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책속의 주인공 린에 비하면 나의 호기심 정도는 새발에 피였다. 그녀는 호탤 객실에 투숙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침대 밑에서 관찰하고 있었다.
’이 여자 제정신이야?’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남을 훔쳐본다’는 호기심의 매력은 나를 비껴가지 못했다.
그녀의 행동은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린은 삼십대 중반의 혼자사는 여자로,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녀는 청소에 강박증이 느껴질 정도로 집착한다. 예민한 성격으로 병원치료도 오랫동안 받아왔고,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씩 의사를 찾아가지만 큰 차도는 없는 것 같다. 그녀는

 

린은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 객실에서 보냈다. 손님들이 두고 나간 물건들을 만지고, 뒤져보면서 그 물건 주인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외로운 그녀의 생활과  답답한 일상에서의 짜릿한 자극이 되었다. 그녀는 더욱 대담해져서 객실 침대 밑에 들어가 객실에 투숙한 사람들을 관찰하기에 이른다.

 

낮에는 타인을 물건을 훔쳐보고, 밤이면 침대 밑으로 숨어들어가는 린을 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정상적인 사고 범위 내에선 그저 ’정신병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한 여자의 호기심과 관음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타인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일면을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은 보통 사람 누구라도 쉽게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에 대해 갖는 관심만큼 진정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외면해버리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인들은 타인에게 쉽게 자신의 진심을 내보이지 않을 뿐더러 상대의 진심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각자의 이론과 편견으로 상대를 마음대로 평가해버리고, 관계를 결정해버리는 것이다. 바쁘고 빠르게 진행되는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 인간관계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물은,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우리에게 사물의 절반은 항상 숨겨져 있어. 병에 든 생수, 연필, 램프, 그 모든 걸 우리는 절반밖에 보지 못해. 단지 옆에서, 혹은 위에서. 절대로 완벽하게 보지 못해, 절대로 전체를 보지 못해. 진짜 모습. 사물의 완전한 모습은 어둠 속에 있어. 우리 모두는 시야가 제한된 존재야. 물을 마시려고 물병을 잡으면, 물병의 뒷면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 그저 뒷면이 있다는 걸 상상할 뿐이지. 그 뒷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거야. 뒷면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물을 마시는 거야. 그래서 우린 분명이 뒷면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물을 마셔. 더도 덜도 아니고. <p.111>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 다가 아닐 수 있다. 진정한 진실과 본질은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우린 그 본질을 쉽게 간과하고 표면적으로만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린이 원했던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자신을 받아들여주길 바랬던 것이다. 자신이 관찰하는 타인과 삶을 공유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을 안타까와했고, 항상 상상 속에서만 이룰 수 있었던 타인과의 소통을 기대했던 것이었다T-FAMILY: 1153573_9"> 친구도 없고, 어울리는 이웃도 없다. 하인츠라는 만나는 남자가 있지만 사실상 오래 전에 관계가 끝나버린 시큰둥한 사이이고, 엄마가 있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아 일주일에 한번씩 통화만 한다. 그러던 어느날 호텔 청소하는 일을 얻었다.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직업이다. 그녀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곳까지 세심하게 뒤집어서 닦고 문지르고 털었다. 시간 외 근무까지 하면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들을 계속 했다. 청소를 하는 것만이 그녀의 존재감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난 원한다. 누군가가 내 침대 밑으로 들어오길. 난 원한거다, 단 한번만이라도 누군가 내 삶에 귀를 기울여주길. <p.129>

 

타인이 먼저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 누군가 알아서 먼저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앞서, 자신이 진정한 마음을 열고 상대에게 다가설 용기는 없었던 걸까?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치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현대인들이 종종 느끼는 고독감은 타인의 문제가 아닌 바로 자신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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