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사랑을 말해줘"

이 간지로운 제목과 빨간색 하트가 그려진 표지가 어찌나 거북하던지... 누가 봐도 ’사랑 이야기에요~’라고 대놓고 제목처럼 말하고 있는 이 책...요시다슈이치를 좋아하지만 이 책만큼은 선뜻 손이가지 않았다. 몇달째 책꽂이 깊숙이 모셔두고 있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서 꺼내 읽었다.  소설 속에 사랑 이야기가 안들어가는 것이 몇개나 있을까?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 소설 속 인물들이 어떤 관계로 나타나던지 꼭 한두가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들 속에 빠지다 보면 나 또한 주인공과 같은 마음으로 공감되어 마음 설레이고, 행복해하며 또 가슴아파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내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즐기고 있음에 분명한데...어찌 대놓고 로맨스소설 같은 책부류에는 선뜻 손이 안가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ㅎㅎ

 

하지만 이책 사랑을 말해줘~는 역시 요시다슈이치 소설답게 그저 통속적인 연애소설이 아니었다.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역시나 우리에게 주는 다소 껄끄러운 송곳 같은 것을 감추고 있었다. 아, 물론 그것이 그다지 크게 염려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슈이치의 여타 다른 소설들에 비하면 그 껄끄러운 강도가 조금 약했다고 할까?  표지 속의 빨갛게 그려진 하트만큼 그래도 따뜻한 느낌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소설 속 여자주인공 교코는 청각장애인이다. 사람 입모양으로 대충 말을 이해하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다. 주위에서 한판 크게 싸움이 나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녀는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는 슌페이와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테러나 폭발과 같은 굵직한 사건을 찾아 돌아다니는 슌페이와 무서울만치 고요 속에 묻혀있는 교코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그들이 소통하는 방법은 바로 메모를 통해서이다. 거기에서부터 소통의 문제가 생긴다.

 

난 말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뭔가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것이 꼭 같지 않음을 느낀다. 이렇게 책 한권을 읽고나면 이 책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마구마구 정신없이 떠오른다. 그것을 말로 정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다. 떠오르는 대로 말하면 되니깐..(물론 말하는 것도 입밖으로 말하기 위해 생각을 해야하니 머릿속에 그저 담겨 있는 상태보단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글로 적으려고 하면, 단순히 말하는 것보다 한단계 더 생각을 해야한다. 왜냐하면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 느낌을 표현할 꼭 맞는 단어나 글이 찾아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글로 써놓고 나면 이상하게 내가 처음 생각했던 어떤 것과 감정적인 면에서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져 있는 경우도 적잖이 생긴다.

 

교코와 슌페이는 바로 이런 문제에서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일이 잘 안풀린단 말이야! 입좀 다물어!"
예를 들면 그런 말도 입으로는 아주 쉽게 나왔지만, 막상 그 기분을 메모장에 쓰려고 하면 ’일이 잘 안풀려’라는 묘하게 초라한 인상을 주는 말로 변해버렸고, 전하고 싶은 것은 당연히 초조함이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굳이 메모장에 쓸 필요도 사라져 버린다. 전에는 입에서 먼저 튀어나왔던 말을 일단 머릿속에서 문장으로 바꾼 후, 그것을 메모장에 쓴다.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그 과정이 ’사람’이랄까, ’인간의 감정’을 가라앉혀 버리는 일도 있는 것이다. <p.58>

 

결국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고, 글로 전하고 싶어도 못전하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부딪치게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꼭 말로써 표현해야 하고, 글로써 전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인가? 여러 갈등을 겪은 연인들은 다시 재회하게 되면서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거창하게 서로 사랑해~라고 말하거나 그 말을 글로 옮기기 전에, 그 사랑의 마음을 먼저 상대에게 전하는 일...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말하는 것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 감정이 통하지 않은 말과 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보다 글보다 더 중요한 것...그것은 바로 통하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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