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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 명화에서 찾은 모델과 화가의 사랑
박희숙 지음 / 북폴리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오래 전에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걸이 소녀>를 본 일이 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 있는 진주 귀걸이를 달고 그윽하게 쳐다보는 수줍은 듯한 소녀의 모습....소설을 읽으면서 난 그 그림을 몇번이나 다시 들여다봤는지 모른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그 소녀의 모습에서 매혹적인 사랑이야기를 구상했다. 실제로 그 소녀가 누구인지, 화가 베르메르와 어떤 관계였는지 전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였건 베르메르와 뭔가 친밀한 관계가 아니였을까 짐작해 본다. 혹 그녀가 베르메르 상상 속의 여인이라 하더라도, 그녀의 그윽한 눈빛 속엔 웬지 모를 애틋함이 묻어 있다. 베르메르의 마음이 그 그림 속에 투영된 것이리라... 사랑의 감정이라 믿고 싶다.
유명 화가의 작품들을 보면, 여인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꽤 많다. 누군가의 초상일 수도 있고, 화가의 상상 속 인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화가가 사랑하는, 또는 화가와 친밀한 관계가 있는 여인들이다. 화가가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을 자신의 그림에 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이지만, 사랑이든, 욕망이든 작품 속에 담겨있는 여인의 모습엔 화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책 표지에 농염한 모습의 누드를 한 여인은 모딜리아니를 사랑한 한 여인이었다. 모딜리아니는 잘생긴 외모로 많은 여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다.
이 책속에는 뭉크에서부터, 클림트, 고흐, 고갱, 달리, 마네 등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담겨 있다. 명화 속 모델들은 아내에서부터 정부, 연인, 제자, 거리의 창녀들까지.. 화가와 관계있는 여인들이었다. 그들로 인해 화가는 행복하기도 했고, 상처도 받았으며, 또 화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는 계기도 되었다. 그녀들은 화가의 예술을 담은 혼이 되었고, 사랑이었다. 그 열정과 사랑의 영감은 화가를 유명한 예술가로 승화시키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로댕과 카미유클로델의 사랑은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평생을 로댕을 바라보며 자신의 전부가 그림자이기를 원했던 로댕의 진짜 아내 로즈 뵈레의 사랑이 더 슬프게 느껴진다. 또 모딜리아니의 아이를 임신한 채 그를 따라 자살한 잔느의 사랑도 애틋하다.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던 클림트에게도 플라토닉한 진정한 사랑으로 남았던 여인 에밀리, 고야가 마음 속에 품고 잊지 못했던 알바 공작 부인, 아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루벤스 등등.. 책속에 담긴 수많은 작품과 이야기는 나의 눈을 끊임없이 작품 속의 여인들에게 붙잡아 두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책속의 글자를 넘어 난 그림들만 훑어보며 책장을 다시한번 넘겨보았다.
화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 작품들로 인해 내 마음도 다시한번 설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