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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타샤
조지수 지음 / 베아르피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덮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떻게든 이 책을 읽고 난 나의 감상을 바로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단 한 줄도 쉽게 그 여운을 표현할 수 없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이렇게 가슴이 먹먹하고 아림과 동시에 두근두근 떨려오기도 간만이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일주일 이상 읽었다 쉬었다를 반복하며, 사이사이 다른 책들도 읽었다. 600여페이지가 훌쩍 넘는 방대한 양도 그렇지만, 이 책만큼 나의 감정을 크게 휘둘렀던 책도 간만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만 읽고 있다간 그렇자나도 우울한 내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슬퍼질 것 같았다.
이 소설은 사랑이야기이다. 하지만 흔히 이런 소설류에 등장하는 러브신이나 다소 열정적인 감정의 흐름, 신체적 스킨십을 묘사하는 장면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로 지난날을 회상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담담한 회상 속에는 그들의 애닮은 사랑와 희생이 너무나 절절히 느껴졌기에 책속에 단순히 서술되어 있는 문장을 너머 난 그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넘겨받았다. 나중에는 조지와 나스타샤의 가슴 아픈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80년대 초반 안타까운 소련의 국제 정세와 그곳에서 정치적으로 희생당한 한 가족, 그 탄압을 피해 자유세계로 탈출한 한 여자... 그녀를 보호하고 아껴주며 그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한 남자.. 이 모든 이야기가 단순히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었다.
처음엔 조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조지를 아프게 한 나스타샤도 미웠다. 또 보리스를 원망했다. 하지만 나스타샤 또한 조지 없이 살 수 없을 만큼 그를 깊이 사랑했고, 이 모든 비극이 그들이 처한 어쩔 수 없는 불행한 현실이었음이 더 안타까울 뿐이다. 그들에게 차선의 선택은 없었던 것일까? 그들은 애써 상대에 대한 뼛속까지 깊게 사무친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인 현실을 택했던 것이다. 그 선택은 바로 상대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누군가를 뼛속깊이 사랑한다는 것..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 책을 통해 깊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여운은 아직까지도 내 가슴 깊게 남았다.
사실 난 소위 말하는 연애소설을 즐겨 읽지는 않는다. 나의 감정이 메말라서일 수도 있겠지만 소설 속 남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에 잠깐 동안의 가슴 떨림을 느낄 수는 있지만 긴 감동의 여운은 느끼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모든 연애소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매우 통속적이고 빠르게 진행된다. 그 빠름의 속도가 말그대로 순간의 즐거움이나 기분전환에는 적당하지만 뭔가를 얻으려 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뭔가를 얻기 위해서만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기분 전환을 위해 책이 필요한 경우도 많긴 하지만.. (물론 이렇게 말해 놓고 연애소설 읽는다. 즐기지 않는다 뿐이지...) ’역시나 아름다운 로맨스에 감동을 못받는 나의 정서가 문제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또 나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작가의 다소 긴 호흡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느린 전개와 작가의 서술 방식에 상당히 애를 많이 먹었다. 작가의 철학적, 종교적, 예술적 감각과 지식 또한 상당했고.. 그 내용은 책속에 많이 녹아있었다. 나의 짧은 머리로 그 방대한 양의 지식을 이해하려니 같은 줄을 여러번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애소설이라 들었는데 연애 얘긴 눈꼽만치도 않나오고 주인공인 나스타샤는 무려 200페이지나 읽어야 나온다. 하지만 초반의 이 느릿한 전개는 캐나다의 대자연 속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침전해 들어가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따라서 이 책속에 주요 장면인 ’플라잉피시’와 ’카누여행’에서는 마치 내가 그 자연 속에 서서 그 경이로운 장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실감났다.
슬픈 사랑의 여운에 아직도 가슴 먹먹한 느낌을 담고 있지만, 감히 이 작품이 ’아름다웠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무엇보다 광활한 캐나다의 대자연이 아름다웠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에 백프로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지고지순한 사랑이 너무 감동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