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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의 해석 - 머리를 쓰는 즐거움
루돌프 키펜한 지음, 이일우 옮김 / 이미지앤노블(코리아하우스콘텐츠)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어릴 때 친구와 '우리만의 암호'를 만들어 쓰던 일이 있었다. 그냥 몇 가지 문자를 우리만이 아는 형태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거창하게 암호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친구와 나만이 소통되고 알아 볼 수 있는 문자이니 '우리만의 암호'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문자를 서로 교환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은밀한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짜릿하다. '암호'라는 것..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문자나 숫자의 조합으로 은밀히 공유되는 정보이지만 그 암호가 너무 복잡해서 아예 해석조차 할 수 없다면 그 암호로서의 가치는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또한 해석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면 시간을 다투는 전쟁이나 첩보전에서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해석하지 못하게 만듦과 동시에 쉽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중적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화창한 이른 아침 이 책을 들고 '우리똘이나무' 밑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산들산들 바람도 불어왔고 책좀 읽다가 골치 아프면 그냥 덮고 한숨 자야지 하며, 이 책을 들고 갔는데... 어는 덧 난 이 책속에 나온 암호의 해석에 빠져 직접 종이에 숫자와 문자를 써가며 몇 시간을 미친듯이 계산하고 있었다. 솔직히 '머리를 쓰는 즐거움' 이라는 이 책의 부재가 처음엔 굉장히 부담스럽게 다가왔었는데..막상 직접 접해보니 굉장한 짜릿함이 느껴졌다. 지금껏 지나온 전쟁이나 첩보전에서 사용하던 수많은 암호에 관한 것들과 그것을 내가 지금 하나하나 해석해하고 풀어 간다는 기쁨은 직접 책을 읽어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속에는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발한 암호와 각종 문건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역사상 밝혀진 수많은 종류의 암호들이 담겨 있다. 수년 전 카이사르의 암호문에서부터 21세기 일정한 수학적 공식에 의해 풀어지는 고도의 계산능력을 요구하는 암호까지....정교한 암호 개발에서부터 그것을 해석하기 위한 노력까지 '정말 이렇게 다 까발려도 되는걸까?'라고 할 정도로 자세히 다루어져 있다. 어떻게 보면 다분히 수학적이며, 조금은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내용들이지만 어려운 수학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이 복잡한 정도는 아니었고..그저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수학이란 학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정도의 즐거움을 주었다. 또한 유명한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들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런 암호의 사용이 역사적 권력가의 권력 유지나 전쟁이나 첩보전에서의 정보교환과 같이 특수한 상황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많이 적용되어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사용하는 신용카드나 은행 업무에 '검사수'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어쩌면 정보전쟁이 치열하고 개인 사생활 업무의 보장이 특별히 요구되는 현대 사회에서 '암호'의 중요성은 더 커질지도 모른다. 지금 이 블로그의 로긴에도 난 이미 암호를 사용하여 들어왔으니 말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새로운 암호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고, 또 그것을 해석하려는 노력도 동시에 진행 중일 것이다. 컴퓨터의 발달로 이젠 다소 수동적인 암호의 해석이 아닌 전문 디지털 방식으로, 인간이 아닌 기계가 그 업무를 대행하겠지만 그 기계를 움직이는 인간의 두뇌 역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매우 기초적이긴 하나 암호의 체계와 다양한 형태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또한 이 책으로 인해 우리 똘이 옆에 몇시간을 같이 있을 수 있어서 더 행복했다. 얼굴에 맞은 아침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