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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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독일 나치 시대에 소위 '선정정치'로 언론을 통제하여 대중을 희롱하고 세뇌시킨 장본인인 괴벨스가 한 말이다. 물론 지금은 독일 나치 시대도 아니지만  언론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터넷의 발달로 온갖 정보가 순식간에 교환되고 있는 현대가 더 할 것이다. 일부 과격한 네티즌들의 악플로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도 있었고, 개인의 사생활이 노출되어 신변에 위협을 받는 사건도 있었으며,  어떤 사소한 사건이 크게 부풀려져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의 편파 보도로 국민의 진정한 알권리가 무시당하고, 눈을 가린 대중을 선동하여 악용하려는 불순한 무리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언론을 한손에 쥐고 흔들려는 못마땅한 현재 국가 정책이 떠올랐고, 언론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에 대해 새삼 느끼는 것이 많았다. 물론 소설이지만 작가는 소설이 아니라 '이야기'라고 표현한다. 그 누구라도 책속의 주인공 카타리나가 될 수 있는 현실이다. 가상의 '픽션' 이 아니라는 것이다. 웬지 마음이 무거웠다. 이 책은 대중의 호기심과 선정적 언론의 보도가 한 평범한 개인의 명예와 인권을 어떻게 처절하게 파괴해 가는가에 대해 보여준다. 평범한 여인이 순식간에 살인범의 정부가 되고 테러리스트의 공조자가 되며, 급기야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된다. 

이 책은 어떤 기자가 살해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살인범은 27살의 카타리나 불룸이라는 매우 평범한 여인이다. 그녀는 자신이 그 기자를 살해했다고 자백한다. 이 살인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시간을 거꾸로 돌려 사건 당일까지 그녀의 행적을 추적하는 내용이 이 책의 줄거리이다. 그녀가 사건에 얽히게 된 경위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괴텐이란 남자를 만났고 그남자와 같이 밤을 보냈는데, 이튿날 경찰이 갑자기 들어와 그녀를 연행해 간다. 괴텐은 알고보니 강도에 살인혐의까지 있는 질나쁜 남자였고 경찰은 끈질기게 그 남자를 쫓고 있었던 것이었다. 괴텐은 경찰이 들이닥치기 전 그 장소를 빠져 나갔고, 카타리나는 괴텐을 빼돌렸다는 혐의와 함께 경찰의 조사를 받고 언론의 호기심 대상으로 대중에게 드러난다.

평범한 한 여자가 댄스파티에서 한 남자를 만났고, 그남자가 범죄자였다고 그게 큰 죄가 될까? 설사 범죄자인 것을 알고 그 남자의 탈출을 도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신문 제 1면을 장식할 정도로 정말 대단한 사건일까? 언론은 평범한 그녀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범죄자의 정부'라는 선정적인 제목을 붙이고 범죄자의 탈출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동조한 질나쁜 여자로 철저하고 악랄하게 헤집었다. '범죄자의 정부'란 자체는 무료한 대중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였고, 대중을 더 부추기기 위한 언론 플레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의 가족 사생활까지 모두 끄집어 내어 그녀의 아버지는 위장한 공산주의자가 되고, 어머니는 교회 재산을 절도한 파렴치범, 그리고 그녀 자신은 질나쁜 창녀가 된 것이다.

남이야기 하기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떠들기 시작하고 사건은 더욱 부풀려져 그녀를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여자로 만들었다. 온 세상이 그녀를 기만하고 농락한다. 또한 '아' 다르고 '어'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그녀나 그녀 주위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은 모두 선정적이고 악의적으로 왜곡되어 보도되었다. 그녀가 어떤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모두 그녀 자신에게 나쁘게 돌아왔다. 그녀가 결국 선택한 것은 살인이었던 것이다. 대중의 저속한 호기심을 부추기며 날조되고 왜곡된 기사들은 한 여자의 인생을 정말 땅끝까지 추락하게 만들었다. 언론 폭력이란 것이 다시한번 정말 무섭게 느껴졌다.

앞서 처음에 이야기 했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각종 정보와 가십들이 난무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익명성이라는 조건 하에 신뢰할 수 없는 정보들이 마구 유포되어 대중을 혼란시키고 있으며, 개중에는 알게모르게 어떤 개인의 명예와 인격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군중심리에 휩쓸려 나또한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골라내어 옳게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는 능력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언론 스스로 공정한 보도에 정보 유포에 노력해야 할 것이며, 자익을 위해 양심을 파는 그런 행위는 제발 안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리나라 현재 언론의 현실이 책속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더 씁쓸하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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