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 제목부터 재밌있고 기발하다. 사실 때때로 나도 나 자신에게 책을 처방한다. 기분이 울적할 땐 이런 책, 화가 안풀릴 땐 저런 책 등등....책발(?)이 잘 받으면 문제가 되었던 불편한 부분이 싹 가라앉기도 한다. 책을 특히나 즐겨보는 내겐 매우 효과적이다.ㅎㅎ 아직 지식의 내공이 부족해서 남에게 책을 처방해 줄 정도의 경지까진 아직 멀은 것 같지만... 이 책은 나의 여름휴가를 위한 처방전 두 가지 중 한권이다. 비행기 안에서 읽을 만한 비교적 가볍고 읽기 편한 책을 고르던 중 눈에 띄인 것이 바로 이책이다.

"하루에 세번 식후 30분 동안 읽으라고?" 이 책의 띠지에 담긴 처방전엔 그렇게 쓰여 있다. 하지만 난 밤 늦은 시간 추위와 졸음을 잊기 위해 두 시간만에 이 책을 끝내버렸다. 책 남용은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ㅋ  밤 12시에 출발하는 인천발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두시간 전부터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더운 날씨 핫팬츠의 가벼운 차림으로 있었던 난 공항 내부의 차가운 실내 공기에 덜덜 떨어야 했고 피로와 졸음에 쩔어 완전히 지져 있었다. 이 책은 내게 그 두시간의 지루함과 추위 그리고 피로를 단번에 씻겨 나가게 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을 뭐라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다. 더군다나 딱떨어지는 결론과 답을 좋아하는 내겐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된다는 거야?"라는 질문을 또 떠올리게 만들었다. 책 속의 부재도 '정신병원이야, 도서관이야?' ' 서점이야, 약국이야.' ' 죽은거야, 산거야?' '엄마야, 아빠야?' '에필로그야, 프롤로그야?'라는 것으로 알쏭달쏭하고 기이한 소재와 내용으로 전개된다. 말하자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둘다 일 수도 있고 둘다 아닐 수도 있는 것들의 연속이다. 

모든 것이 물음으로 되어 있지만 명확한 답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내용들이 결코 헷갈려서 정리가 안된다거나, 무겁고 복잡하다거나, 답을 몰라 답답하다거나 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가볍게 그 자체의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뭔가 확실한 결말을 원하는 내겐 챕터마다 뭔가 덜끝난 듯한 느낌이 들어서 처음에는 쉽게 작가의 메세지에 익숙해지지 못했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작가의 상상력과 나의 상상력이 자연스럽게 융화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즉, 다시 이야기하면 우리의 생각의 틀을 꼭 한쪽으로만 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고 좀더 열린 생각과 상상을 해보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굉장히 유쾌한 책이었다. 또한 중간중간 눈에 띄는 삽화도 즐거웠고...피로에 지친 여름 밤... 이 책은 정말 좋은 처방이었다.



"그러니까 결론이 뭐야! 정신병원이야, 도서관이야?"
"결론에 왜 그렇게 집착하세요?"
칼비노가 물었다.
"꼭 이것 아니면 저것일 필요도 없고, 그것일 필요도 없어요."
"뭐가 됐든지 간에 두 개가 있으면 그중 하나만 맞는 거야.
이것 아니면 저것, 둘 다 아니만 다른 것."
루크레시오가 단언하자 에밀리나가 끼어들며 말했다.
"선생님은 한 가지 가능성을 잊고 계시는 군요. 한꺼번에 둘 다 될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이것이나 그것, 또 아니면 저것이나 그것, 또 아니면 한꺼번에 세 개 다!" <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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