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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포플러 나무
안네 B. 락데 지음, 손화수 옮김 / 행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북유럽..그것도 노르웨이의 문학은 처음 접해보는 것 같다. 이 작품은 피요르를 비롯한 이국적 정취와 네스호브라는 농장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베를린 포플러 나무란 것도 뭔지 잘 모르겠고 처음 접해보는 북유럽 문학이지만, 난 이 작품이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다소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빠져들 수 있었다. 독서를 즐기면서 뜻하지 않던 작품을 만나게 되고, 그 작품이 예상외로 괜찮았을 때, 그 행복감의 여운은 또 다른 책을 찾아 헤메이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독서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강력한 쾌감이다. ^^
여느 농촌 풍경과 비슷하게, 큰아들이 부모님을 모시며 가업을 이어 농사를 짓고 돼지를 키우고, 나머지 형제들은 도시로 뿔뿔히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산다.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지면서 뿔뿔히 흩어졌던 한 가족이 옛 고향 네스호브에 다시 모이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가족의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따지고 보면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가족 구성원들과 그 가족에 숨은 내막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내용이다.
아버지는 80대 노인으로 집안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허수아비로 아내와 자식들에게 무시당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조금은 바보같은 사람이다. 농장의 모든 실권은 어머니가 쥐고 있다. 자식들의 결혼 문제에도 강력한 결정권을 휘둘러 장남인 토르가 임신시켜 데려온 여자도 마음에 안든다며 내쫒아 버린다. 장남인 토르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가업을 이어 돼지를 키우며, 결혼도 안하고 홀로 살아가는 다소 무능력한 사람이고, 둘째 마르기도는 장의사이며 가족과 거리를 두고 7년 이상 고향에 온적이 없다. 막내 에를렌은 동성애자로 애인과 덴마크에서 살고 있으며, 20년 이상 집에 온적이 없다. 그리고 토른, 그녀는 토르가 청년시절 하룻밤의 인연으로 얻은 딸이다.
한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가족의 유대가 끊어진지는 오래되었다. 그저 핏줄만 이어받았을 뿐이지 고향에 대한 애착이라든지 형제간에 친분도 거의 없다. 토룬은 아버지의 얼굴을 단 한번밖에 본적이 없었고, 그녀의 삼촌들은 그녀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그런 그들이 어머니의 병을 계기로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그동안 몰랐던 가족간의 갈등과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금 지루하고 별볼일 없을 것 같은 가족이야기지만 그 잔잔한 내용의 흡입력은 책을 덮기 싫을 정도로 나를 붙잡아 두었다. 책의 구성도 가족 한사람 한사람 각각의 내면이 돌아가면서 소개되는데, 제일 첫장에 나오는 마르기도의 장의사 일에 대한 것은 그 내용을 한번도 접해 보지 못한 내게 흥미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각각 가족 구성원의 내면을 통해 그들의 생각과 삶을 엿보고 오해와 갈등을 해소해 가는 과정은 잔잔하면서도 애틋했다. 섬세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마치 고백하는 듯한 편안한 전개는 이 책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가족의 이해와 사랑이었고, 그것은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모두 공감하는 진리다. 따라서 이 소설이 이국적인 정취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느껴졌고, 또 그 속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다시한번 이런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즐거웠다. 노르웨이에서도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작품이라 한다. 이 작품은 네스호브가의 세번째 이야기 중 첫번째라는데, 나머지 두 작품도 빨리 우리나라에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