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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과학 사기극 -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모략과 음모로 가득 찬 범죄 노트
세스 슐만 지음, 강성희 옮김 / 살림 / 2009년 1월
평점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던가? 과거의 기록과 문헌을 찾다보면 그 시대 상황이 어땠느냐에 따라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진다. 따라서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현대에 와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과학의 발달사 또한 역사의 한 부분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한순간도 의심없이 진리로 받아들였던 사건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하는 것은 적잖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동안 믿어왔던 진실과 진리라는 것에 대한 모든 것에 의심이 갔다. 처음에는 이 책의 내용을 믿을 수 없었다. 단순히 작가가 꾸며낸 가상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시대적 정황과 각종 진술, 그리고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나타내 주는 여러가지 자료를 통해 이 사건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었고, 작가와 마찬가지로 '진실'에 대한 것에 의문이 갔다.
어릴 때 읽었던 전기나 과학책을 통해 '전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유명한 일화를 기억한다. "왓슨, 이리 와주게."라고 각각 다른 방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역사적으로 전화라는 대발명이 탄생하는 순간을... 벨이 전화를 발명했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세스 슐만은 이 '역사적 진실'을 '지상 최대의 과학 사기극' 이라고 말하며, 부정한다. 세스 슐만은 동시대의 과학자 에디슨과 벨을 연구하던 도중 벨의 실험노트를 조사하던 중 '벨'의 사기 행각이라 믿을만한 여러가지 단서들을 발견하고 진실을 추적하기에 이른다.
벨과 같은 시기에 전화에 대해 연구하던 경쟁자 엘리샤 그레이란 과학자가 있었다. 벨과 그레이의 특허 신청에 있어서 간발의 차이로 벨의 신청이 먼저 접수되어 역사상 가장 돈을 많이 벌어들인 발명품의 발명가로 벨이 인정을 받게된다. 하지만 특허 신청에 있어서도 의심가는 부분이 많았다. 벨이 특허 신청을 낸 날은 1876년 2월 14일인데, 전화로 음성 송신을 성공한 날은 3월 10일이다. 어떻게 만들지도 않은 것을 특허 신청을 낼 수가 있단 말인가... 또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벨이 엘리샤의 '액체 송화기 도안과 가변 저항 개념'을 노골적으로 베끼고 이 사건을 은페하려 전전 긍긍했다는 너무나 확연하게 드러나는 결정적 증거와 단서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또한 벨이 직접 작성해서 보관하고 있던 특허 신청서 사본 왼쪽 여백에 글이 적혀 있는데, 그 부분에 가변 저항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전화 발명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이 왜 여백에 추가로만 적혀 있는지 이상하다. 자신의 발명품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마지막 순간까지 빠뜨리고 있었다는 것은 충분히 의심을 살 만하다. 벨보다 십년 이상 앞선 시기에 음성을 전송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든 필립 라이스란 과학자의 연구에 대해 벨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증거도 있었고, 벨이 다중 전신기 발명에 정신을 팔고 있던 그레이가 알아차릴 수 없도록 전화 발명의 과정을 교묘하게 가린 증거, 또한 벨의 도용 행위를 돕고 그가 실제 만들지도 않은 발명품에 특허를 내주었다고 주장하는 특허청 관리의 고백도 등장한다.
이런 여러가지 의심가는 정황에도 벨이 특허권을 인정받고 발명가로서 명망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주변의 여러가지 권력들도 함께 작용했다. 하버드란 정치 권력가, 변호사, 또한 정부 조차 권력에의 방향에 유리한 벨의 손을 들어주었다. 또한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침묵했다. 미국 특허청은 왜 벨에게 발명품 모델을 제출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는지.. 엘리샤 그레이는 왜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았는지.. 무수한 의문이 아직도 남겨져 있었다. 모든 정황들이 벨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고, 어떻게 보면 벨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반면 엘리샤 그레이의 불운은 그가 술수에 능하지 못했다는 점도 작용한다.
이 모든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벨은 과학자의 양심에 먹칠을 하고,그의 도용행위와 사실 은폐 등 일련의 모든 행위들이 '사기'로 볼 수 있으며, 범죄 행위가 되는 것이다. 충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벨의 연구 노트와 행적을 추적한 결과이지만, 한 과학자의 숨겨진 내막이라기보단 사회 통념 내지는 우리 시대가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권력에의 병폐에 대한 양심적인 추척의 내용이다. 권력과 힘에 의해 우리는 언제까지 휘둘려야하며, 진실은 어디서 찾아야 되는 것일까...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양심을 팔아서 위대한 과학자로 이름을 남겼고, 당대에 명예와 부를 갖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의 마음은 그리 편해보이지는 않았다. 법정에서는 그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의 태도에서는 분명 당당함이 결여 되어 있었다는 것을 곳곳의 정황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보면 벨은 분명 사기꾼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 각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정말 진정한 진실은 벨의 양심 속에 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건을 통해 절대적 진리' 라 하는 것에 대해 한번쯤 의문을 갖는 것도 역사를 대하는 좋은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문과 분별력을 갖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 우선이겠고, 역사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있어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크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