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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관하여 ㅣ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2
예자오옌 지음, 조성웅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화장실에 관하여... 특히 중국의 화장실에 관해서는 않좋은 기억이 있다. 몇년 전 중국을 갔었는데, 볼일이 급해서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에 문도 없고, 칸막이도 없고, 그저 뻥 뚫린 공간에 일렬로 주루룩 앉아서 엉덩이를 내리고 앉아 있는 여자들을 보는 순간 놀래서 그냥 뛰어나왔던 적이 있다. 마렵던 오줌도 쑥 들어간 느낌이었다.ㅋ 또 한번은 유명한 관광지의 화장실을 들어갔는데, 나를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줄서기 인식이 몸에 배어 있어 입구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뒤늦게 들어온 중국 현지인들은 줄이고 뭐고 무작정 밀고 들어왔다. 차례를 지키라고 말을 해도 소용없었다. 중국의 화장실 하면 굉장히 더럽고 무질서한 인상이 떠오른다.
물론 내가 일부 중국의 화장실을 보고 안좋은 편견을 갖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 하면 웬지 우리나라의 한 2,30년 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또한 지금은 시민의식이 많이 높아져 줄도 잘 서고 문화시민으로서 교양있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지만, 불과 20여년 전만해도 현재의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공중 화장실은 너무 더러워서 들어가기가 꺼려졌고, 한줄서는 습관 또한 그땐 인식이 제대로 안되어 있을 때였다. 지금의 공중 화장실은 정말 깨끗해졌다. 휴지가 없는 곳도 거의 없다. 화장실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한 나라의 사회와 문화의 발전사가 눈에 보인다. '화장실에 관하여..'라고 운을 떼놓고 나니 책과 관련없는 사설이 너무 길어져버렸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매우 가까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웬지 중국문화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화장실에 관하여>.. 제목이 너무 흥미로와 충동적으로 손에 들어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생각만큼 그리 쉬운 소설은 아니었다. '화장실에 관하여'를 비롯하여 '연가', '추월루', '대추나무 이야기'의 4가지 단편으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중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담고 있었다. 난징 대학살과 문화 대혁명 등 중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배경지식이 많지 않았던 난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익숙하지 않은 중국 이름의 많은 인물들 역시 쉽게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헷갈렸다.
네 가지 단편 모두 기억에 남지만 그중 <화장실에 관하여>에 대해서만 짧은 인상을 남겨 본다. 이 단편 속에도 몇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첫번째 이야기는 뭇사내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외모 반듯한 양하이링이란 처녀가 동료들과 상하이 연수 길에 올랐다가 화려한 도시 한복판에서 화장실을 못찾아 오줌을 싸고 만다는 다소 우습고 황당한 이야기이고, 두번째 이야기는 문화 대혁명 시기에 농촌으로 옮겨한 한 가족이 화장실 청소를 하며 적응해가는 이야기이다. 문화 대혁명 이후로 계급투쟁의 역사까지의 커다란 사회적 격변을 화장실이란 공간을 이용하여 매우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각종 문헌과 역사 속에 인용되어 있는 화장실과 배설에 대한 이야기들은 중국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중국의 화장실 문화를 매우 담백하고 위트있게 담고 있다.
사실 중국 작가가 쓴 중국 소설은 처음 읽어봤다.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일본 문학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중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도 생겼고, 기회가 된다면 또다른 중국 소설들도 읽고 싶어졌다. 가깝지만 의외로 문화적으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중국...내가 너무 일본 위주의 문학만 편식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생긴다. 다양한 문학과 책을 섭취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까지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 모든 것을 다 취하고 싶다는 것은 너무나 큰 자만과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와 근접한 나라 중국 정도는 관심을 갖고 자주 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