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는 어느날 갑자기 무언가를 쓰고 싶어져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늘 무언가를 읽고 싶어서 책을 드는 것 처럼... 매일매일 몇권씩의 책을 손에 들고다니는 나를 보며, 주위 사람들은 묻는다. 책이 그렇게 재밌냐고.. 내 동생은 또 이렇게 말한다. 언니가 매일 그렇게 책 속에만 파묻혀 지내니깐 현실과 허구를 구별 못하고 지금까지 이 상태로 있는 거란다. 내가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으며 소설 속의 멋진 남성상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소설과 현실을 구별 못할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지만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고 싶은 곳이 책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무언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에 어떤 목적이나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좋다는 것, 마음에 든다는 것으로 족하다. 단지 읽고 싶은 마음으로 너무 가볍게 읽어서 일까, 다 읽고 나니 도대체 이 작품이 무슨 이야기인지 뭘 말하고 싶은 것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키 자신이 글 쓰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은 데릭 하퍼필드에 관해 그의 작품을 비롯해 여러가지 상세하게 그려냈지만 정작 그것이 하루키가 꾸며낸 이야기였다는 것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는 것 뿐....뭔가 허무하다는 여운이 가슴 속에 확 퍼지는 것 같았다. 책장을 뒤로 넘겨 다시한번 읽었다.

이 글은 1970년 여름 주인공이 21살 대학생 시절의 18일 동안의 일들을 마치 일상의 일들을 기록하 듯이 가볍게 그린 소설이다. 그는 부자이지만 부자를 몹시 경멸하는 ’쥐’와 제이스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지낸다. 어느날 손가락이 한개없는 소녀을 알게되고...쥐와 그 그리고 그녀와의 일상이 특별한일 없이 그냥 흘러간다. 이것 저것 의미없는 일들이 중구난방으로 나열되어 있어 처음에는 책의 줄거리나 감정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저 하루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마구 풀어논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속내를 한번 쯤 잘 생각해보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껄끄러운 것이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이는 그들이지만 각자에겐 결코 순탄하지만 않은 과거가 있었다. 그 과거마저도 너무 맹숭맹숭하게 지나치 듯이 나열되어 있어 책을 읽는 나 조차 별 생각없이 지나쳐버렸다. 또한 그들 각각 상처 입은 내면을 결코 아프다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 서로가 상처받은 내면을 모르듯이 나또한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사람들의 일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늘 사람의 겉모습만으로 그들은 다 알았다고 섣불리 생각하지는 않는지.... 마치 내가 이 소설을 아무생각 없이 후루룩 읽고 난 첫 느낌처럼...
"한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p.147>

그는 다시 도쿄로 돌아왔고, 손가락이 네개밖에 없는 여자와는 그 후 두번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1970년 짧막한 여름 그녀와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그 이전 여자 친구와도 또 그 이전 여자 친구와도 여러 일이 있었지만 모두 과거로 흘러간 듯 했다.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p.143>

현재 20대 후반인 그는 21살 그때의 일을 다시 회상한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치 전혀 상처입은 것 같지 않은 듯 흘려버린 과거였지만 마음 속 깊게 지나간 모든 것이 새겨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녀와 함께 걷던 길을 걷고, 창고의 돌계단에 걸터앉아서 홀로 바다를 바라본다. 울고 싶을 때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법이다. <p.145>

이 책을 읽으면서 상처받은 그와 그녀 그리고 그들에 대해 생각했다. 상처하나 없이 늘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물론 겉으로 대놓고 나 상처받았어요.슬퍼요 라며 맘껏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현실이 되었다. 또한 날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신의 상처나 결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더러 남의 감정에도 그렇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상투적인 위로의 말 외에는 해줄 수 없고 서로의 아픔에 대해선 무력해질 수 밖에 없다. 주인공 또한 공허함을 가득 담은 채 과거를 회상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모든 건 스쳐지나간다.. 그렇게 과거의 아픔도 상처도 바람처럼 희미하게 사라져버리길 바래야 하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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