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도저히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죽어서 당신이 행복해진다면, 난 절대 죽고싶지 않다"고. 
"당신이 죽어서 고통이 사라진다면, 나는 절대 당신을 죽게 놔둘 수 없다"고. 
"그러니 난 죽을 수도 없고, 당신 앞에서 사라질 수도 없다. 내가 사라진다면, 난 당신을 용서한 게 돼버리니까"라고. <p207>

고등학교 시절 강간당한 사건을 계기로 어긋난 인생을 살아가는 여자. 그리고 사회로부터 용서를 받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남자...
그들의 동거가 시작된다. 서로가 불행해지기 위해...

이 소설은 집단강간이라는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에 대한 이야기이다. 피해자인 여자는 자신이 그 사건에 대해 이해받고 용서받길 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회적 비난이었고 가족들로부터의 냉대였다. 삶은 계속 나락으로 추락하고 다시 새롭게 재기할 의욕마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에 대해 쉽게 용서받고 사회로 순조롭게 복귀할 수 있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편견이며 현실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가해자 중의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일로  벌어진 그 사건에 대해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피해자인 여자가 그 사건을 계기로 불행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은 그도 더없이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서로 동거를 시작한다. 
피해자인 여자에게 그 남자는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발각되는 위험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남자였고, 
가해자인 남자에게 그 여자는 과거로부터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던 것에 대한 구원의 희밍이었다. 정작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은 사회로부터가 아니라 바로 그녀와 그 자신이었으므로...

그들의 동거는 사실 이해할수 없었고, 
여자가 그 남자를 정말 용서해줘도 되는지.. 그리고 남자 또한 그 죄를 용서받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없었던 일처럼 정리될 수 있는지.. 
그들의 삶 자체가 고통이고 사실 집단강간범이라는 파렴치한 남자의 죄에도 불구하고 왜 남자에게 조차 연민이 느껴지는지... 나 자신조차 정말 혼란스러웠다.

그들은 서로가 용서받고 싶어했던 것이었다.
난 누군가에게 용서받고 싶었어요. 그날 밤 어린 나의 경솔한 행동을 누군가에게 용서받고 싶었어요. 그런데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도 용서해주지 않았어요.나는 나를 용서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p.200>

항상 즐겁고 시원해지는 내용의 책을 골라 읽을 수는 없지만 이 책만큼 안타깝고 답답한 소설은 처음이었다. 소설의 배경도 비질비질 땀이 쏟아지는 찌는듯한 여름 속이다. 아마 이 책을 여름에 읽었다면 난 숨이 막혀버렸을지도 모른다. 산뜻하고 맑은 느낌의 <7월 14일의 거리>란 이야기를 꿈꾸던 난 이 소설은 적잖이 실망이었다. 하지만 소설 내용이 기대에 못미쳤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각박한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요즘 특히나 여성을 상대로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데, 그들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사회적 고통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 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제 3, 제 4...의 가해자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가해자라는 인식없이 피해자를 두번,세번 죽이는 일들을 서슴치 않는다. 이것이 사회적 편견이고 현실이다. 과연 죄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 씁쓸하게 생각해 본다.

"사요나라"란 인사가 왜이렇게 슬픈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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