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운에는 나름의 기술적인 측면과 과학적인 측면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좋은 운을 붙잡는 기술은 배워 익힐 수 있다고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모험과 요행을 바라는 모험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하게도 좋은 운을 붙잡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모험을 해야 한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모험의 경우 결과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모험에서는 내 행동이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귀인을 만날 운은 사주 명리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귀인과의 만남을 행운으로 만드는 것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모험이다.
아무리 귀인이 나타났다고 해도 용기를 내서 말을 걸어야만 한다. 행운의 기회가 들어올 통로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이야기이다.
운에 대한 입장에서 저자는 아버지와 이견이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꾼 많은 일이 기막힌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문이 활짝 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저자의 아버지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 덕분이라고 믿었던 반면, 저자는 어떤 행운은 특정한 습관과 태도를 꾸준히 길렀기에 기회가 찾아왔을 때 즉시 잡을 수 있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저자의 아버지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고, 저자는 '행운'을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운'은 '운명'과 '행운'이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사주 명리학에서 의문스러웠던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