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이 질문 앞에서 '칭찬'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해 부모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독이 되는 칭찬도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결과 중심의 칭찬은 잘해야만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도전을 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칭찬보다 아이가 자신의 삶 자체를 수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체는 삶을 정면으로 묻는 철학자이다.
그는 우리에게 착하게 살라 거나, 견디라고만 말하지 않는다. 남들이 정한 좋은 삶을 따라가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내가 욕망하는 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 '내가 고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끝인가, 아니면 나를 다른 상식으로 단련시키는 시작인가.'
이런 불편한 질문들 앞에서 우리는 깨어난다. 남들이 칭찬하는 삶을 내 삶으로 착각한 순간을 알아차리게 된다.
저자는 니체를 어렵게 읽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철학을 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 먼 이론으로 두고 싶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의 사유 안에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힘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 삶을 잃어저린 사람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을 계속 줄여온 사람에게, 실패가 두려워 원하는 일을 미뤄온 사람에게, 이미 지나간 일을 붙들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에게
'네 삶을 피하지 말라.', '네게 주어진 것들을 남 탓으로 넘기지 말라.', '지금 네 고통까지도 너의 힘으로 바꾸어라.'라는 니체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자유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느 날 갑자기 자유로운 삶이 완성되는 일은 드물다고 했다.
오늘 배운 한 가지, 오늘 써본 한 문장, 오늘 견뎌낸 한 시간,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사람은 조금씩 자기 삶을 움직일 힘을 얻는다 말한다.
니체가 《우상의 황혼》에서 말한 "제대로 된 모든 고등교육에는 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라는 문장에서 춤의 의미는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인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라도 춤(나만의 리듬)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냉소적인 철학자인 니체를 만나니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이 더 소중해진 것 같다.
작가가 왜 니체야말로 삶을 가장 끝까지 사랑하려 한 사람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