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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마지막 수업
주루이 지음, 하진이 옮김 / 니들북 / 2026년 1월
평점 :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은 철학자 주루이가 임종을 앞두고 남긴 마지막 사유의 기록이다.
이 책은 단순히 ‘죽음을 앞둔 한 철학자의 고백’이 아니라, 철학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끝까지 지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명이기도 하다.
2024년 7월 12일, 주루이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졌고 그의 생명은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 순간을 혼자 감내하는 대신, 젊은 기자 제이홍과의 대화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세상과 나누기로 선택한다.
7월 15일부터 매일 밤 11시 반, 열흘간 이어진 인터뷰는 죽음을 앞둔 사람의 기록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차분하고 또렷하다.
인터뷰를 마친 뒤, 그는 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이 담담한 선택 앞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의연할 수 있었을까. 삶과 죽음을 통달하지 않고서 가능한 태도일까.
주루이는 말한다.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질문, ‘왜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가’가 바로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두려움을 없애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두려움의 대상을 제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 그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다. 철학자의 방식은 언제나 후자다.
죽음을 없앨 수는 없지만,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신을 가질 수는 있다는 믿음. 이 책은 그 믿음이 공허한 이상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주루이가 ‘죽음을 연습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과거 비행기를 타고 가다 극심한 난기류를 만났을 때, 그는 추락의 공포 속에서도 놀라울 만큼 침착했다고 한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있었다. ‘살겠다고 옆자리에 앉은 노부부를 밀치지는 말자.’
이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소크라테스의 말이 떠오른다. “정말 어려운 것은 죽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비열함을 피하는 것이다. 죽음보다 비열함이 더 발이 빠르기 때문이다.”
철학이 몸에 밴 사람만이, 죽음의 순간에조차 죽음보다 비열함을 먼저 경계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앞두고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변증론』을 떠올리게 한다.
대화 형식이라는 점에서 독자는 철학적 사유를 일방적으로 전달받기보다, 질문하고 함께 고민하는 위치에 놓인다.
특히 대화 상대가 스물여섯의 젊은 기자라는 점은 인상적이다.
죽음을 앞둔 노철학자와 삶을 막 시작한 청년의 대화는, 특정 세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유효한 삶의 질문으로 확장된다.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은 죽음을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죽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태도, 끝까지 자신으로 남는 법을 보여준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죽음이 덜 두려워진다기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어쩌면 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비열해지지 않는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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