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박사의 이름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화병’이라는 단어가 연결된다.
한국인의 특유한 정서를 세계적 정신의학 용어로 정립한 장본인, 그리고 120권이 넘는 저서를 남긴 정신의학·뇌과학 분야의 거장.
올해 91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여전히 연구와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심이 절로 든다.
그 긴 세월 동안 인간의 마음을 탐구해온 이시형 박사가 이번 책 『숙맥도 괜찮아 용기만 있다면』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로 다가왔다.
책은 ‘숙맥’이라는 다소 귀여운 이름의 인간 유형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가는 한국인의 소심한 기질이 시대가 변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며, 이를 ‘소심공포증’이라 정의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주저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숨기고, 마음속 열정을 세상 밖으로 꺼내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 숙맥형 인간이며, 요즘 많이들 이야기하는 MBTI로 따지면 ‘I(내향형)’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내향형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에너지를 얻고,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며, 소수와 깊게 관계 맺기를 선호한다. 강점도 있지만, 감정 표현이 서툴고 도전 앞에서 쉽게 움츠러드는 모습 또한 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읽다 보니 '숙맥이어도 괜찮다'는 제목의 문장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소심함은 결함이 아니라 특성일 뿐이며, 다만 그 특성 때문에 스스로 발목을 잡혀버릴 때 필요한 것이 ‘조금의 용기’라고 작가는 말한다.
남 앞에서 한 마디 더 꺼내보는 용기, 회피하고 싶은 상황 앞에서도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배짱, 나를 드러내는 연습.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미세한 용기의 축적이 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는 숙맥형 독자에게 큰 힘이 된다.
책은 ‘용기’라는 단어를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소심함을 넘어서는 방법을 제시한다.
더 폭넓은 인간관계를 시도해보기, 의견을 분명히 표현해보기, 때로는 실패를 감수하고 도전해보기 등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읽고 나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도 머뭇거리고만 있지 않은가? 작은 용기 하나만 있어도 달라질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