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쓰는 시간
임은자 지음 / 프로방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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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4년 전, 마을 도서관 <시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동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 후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양이 쌓여야 한다는 이은대 작자님의 말씀을 듣고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저자는 날마다 빈 화면을 채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글을 쓰는 시간은 당황스러웠지만, 오늘은 어떤 나를 만나게 될지 기대되었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물리적인 양을 얼마나 많이 쌓았는지 알 수 있었다. 작가는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았다 말하지만, 문체는 부드러웠고 내용은 편안해서 읽는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오랜 시간 힘들게 공들여 적은 책일 텐데 너무 단숨에 읽은 것이 미안할 지경이었다.

눈썹 문신을 한 일화가 특히 재미있었다.

조폭과 아줌마의 공통점이 너무 웃겨서 한참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분들과 동급이다. 칼을 잘 쓰고, ’형님‘이라는 말을 잘 쓰고, 몸 어딘가에 문신이 있으며, 제 식구를 끔찍이 여기니까.

50번에 가까운 봄을 보냈고 50번에 가까운 겨울을 보냈기에, 한 계절에 한 가지 기억만 남아도 봄 시리즈 50편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날이 다 기억나지 않고, 모든 날이 다 저장되어 있지 않다는 저자의 말에 많이 공감했다.

50번까지 갈 일도 없이 한 달에 한 가지라도 일기처럼 남겨두자 다짐했다가 기억에 남는 일이 없어 흰 종이를 앞에 두고 시름만 하다가 결국 포기한다. 하물며 어린 시절 기억이야 오죽할까.

지나온 날은 고스란히 축적돼 있었고 글을 만나 되살아났다.

그 모든 삶이 글이 되려고 나에게 주어진 모양이다

어렸을 때 ’내 이야기를 쓰면 책 몇 권은 거뜬히 나온다‘라고 말하는 어르신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심심해 보이고 지루해 보이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허풍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파란만장하게 사는 삶은 특별한 몇몇의 이야기일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어르신들의 그 말씀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길을 가다 코스모스 한 송이만 만나도 어린 시절의 어느 날이 떠올라 글 한 꼭지는 충분히 쓸 수 있겠다 싶다. 

’뭐 대단한 게 있다고 내 삶을 기록으로 남기냐‘라며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 애써 외면했던 갈망이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되살아났다. 멋들어진 서사가 담기진 않겠지만, 적어도 비루했던 과거를 비루한 채로 기억에 남겨두고 싶진 않다. 비루한 기억도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일조를 했노라 인정하고 해방시켜 주고 싶다. 그런 연유로 나도 언젠가는 나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길 바라본다. (우선 일기라도 한 장이라도 좀 써 보시지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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