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논어 + 철학노트 필사본 세트 - 전2권
공자 지음, 김형찬 옮김 / 홍익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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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는 아무래도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특히나 에브너나 부버 철학에서 나오는 나와 너의 사이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것이 인이다. 이 인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고 상대방을 세워야 한다는게 이 내용이다. 그리고 유교의 전통을 나오게 하는 내용도 있다. 조상에 대해서 아버지에 대해서 어머니에 대해서 효를 해야 된다고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이책은 공자가 지은책이라고 이야기 해서도 안된다. 다른 사람이 공자의 로기아 자료를 가지고 집대성 해놓은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 있게 본 장면은 안회에 대한 이야기였다. 안회는 공자의 제자중에서 가장 훌륭한 제자지만 빨리 죽은 사람이다. 안회는 공자가 이야기 한 모든것을 지키는 사람이었고 실천한 사람이다. 중용 인간의 맛이라는 강의에서 들은 바로는 이 안회는 3개월 정도 되는 기간동 공자가 이야기 하는 것들을 지키며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켜 나갔다. 나도 안회처럼 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안회가 글을 쓰고 실천해서 깨달은 바를 적어서 책으로 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매우 재미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인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예에대해서 아주 많은 분량을 쓰는데, 인의예지라는 말이 공자의 언어에서 나온것이라고 생각 되어진다. 맹자가 맹자라는 책에서 인의예지를 강조했다면, 논어는 인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설명하면서 그 인으로 예와 지와 의를 설명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예는 아무래도 우리가 가져야 할 예의 라는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예의 상대방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태도이다. 그리고 죽은 조상에 대한 예 이를 두고 효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재미 있는 부분은 공자는 영혼에 대해서와 하느님에 대해서는 침묵을 했다. 이땅에 있는 것들을 알기에도 바쁜대 신에 대해서 논할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하는 많은 말들은 사이에서 성인과 보통 평범한 사람과의 대조를 많이 이야기 했다. 인의 개념을 이야기 하면서 인한 사람이 성인이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성인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말하는게 아니라 한국에서의 전통과 사이에 대한 개념이 한국에 많이 녹아져있어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논어는 너무나도 한국 사회에 녹아져있어서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없어서 쉽게 빠져나가는 경험을 많이 했다. 논어는 그리고 경영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고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이야기 하는데 그보다는 지배 하려고 하는 자들의 CEO의 글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으로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느껴진다. 이 사랑이 있었기에 기독교 전통으로 있었던 서양 보다는 뒤쳐져있었지만 그긴시간동안 지배해서 올바른 질서와 통치를 가능하게 해주는 듯 해 보였다. 사실 모세오경을 보면 아브람 이후 모든 신학을 하는데 맨처음 정해 놓았던 것은 질서를 위한 법이었다. 이 법은 율법인데, 이처럼 동양사상의 핵심인 논어에서는 이 윤리와 마찬가지인 율법을 정해 놓은듯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논어는 동양의 율법책이라고 이야기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짧고 이해하기에도 어려움이 없지만 이를 통한 질서는 지금 봐도 아주 유용한 생각이 많다고 느껴졌다.
 논어는 비판보다는 더 읽어서 생각을 다시 정리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쉬워서 기억에 휘발성이 너무나도 강했다. 어려운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사람이라는 특징이 여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고전을 읽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정리하거나 외우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라고 권유하고 싶다. 정말 동양철학은 어렵지가 않았다. 대신 이 책은 여러번 봐야 진가가 나온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여러번 봐야 그 내용에서 나오는 깊은 뜻을 정리하거나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줄수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이 논어에 대한 사서삼경에 대한 지식은 여러 책으로 번역 되어지고 원어로도 써보고 별에 별 일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해야 하는 것은 다른책도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양철학에서는 상대적으로 전통을 중시 여기다 보니 그 사상을 뛰어 넘은것을 말하지 않고 그 전통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일을한다. 이는 옳바르게 한다고 느껴지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양 철학에서만큼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느껴진다. 성리학 양명학 같은 모든 사서삼경 뿌리의 질서의 종속 되어 있는 유교 철학은 일면 질서를 유지 시키는데 좋게 여겨지지만, 이는 한 사람에 대한 존경이나 천재의 종속 사상의 무뎌짐 발전 없음이 초래 되고 말았다고 생각이 든다. 아예 니체처럼 모든 것을 회의하고 그 남은 잔재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쓰는 뛰어 넘으려는 노력이나 시도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논어를 뛰어 넘으려는 생각을 한사람이 별로 없겠다고 느껴질수도 있다. 이게 아닐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글고 옮겨 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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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
마르틴 부버 지음, 김천배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197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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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의학의 맹점과 한계는 이책으로 정해졌다고 보는게 분명하다. 아니면 에브너가 말하는 나와 너가 정해놓았다. 나와너가 무슨 이야기냐고 하자면, 나는 너와 대화를 해서 이루어지는 혼자서는 있을수 없는 존재라는것을 증명해주고 이 두사이는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로 되는 기본 사유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에브너는 나와 너는 호격과 1격으로 대표되는 형식으로 말해야 된다. 그리고 모든 사고를 이를 통해 할수 있지만 제한적이다. 또한 나와 그것의 사이는 상대방을 잘 모르고 인격적인 사유를 하지 못하게 하는 못하게 가로 막는 일을 하게 된다. 나와 너의 사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존재 방식지만 이 존재방식을 추구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사고가 코기토로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를 망치거나 부분만 아는게 아니라 전체를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에 코기토보다 나와너로 사고 하고 싶다고 하는게 이 책이다. 또한 나와 너로 인과론이 맞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을 보면 아주 흥미로웠다. 사실 이책을 한번에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와 너로 인격적으로 사유하자이다.

 현대 교의학은 왜 이 철학적 신학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즉슨 헤겔과 니체로 이어지는 현대철학의 간악함을 한번에 잠재우고 있는 두철학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를 대표하고 그들을 전승해서 사유를 전체를 파악한다는 의도와는 달리 사유의 축소를 하게 되는 철학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진리의 한부분만 보지않고 전체를 계승할수 있는것인가? 하기 매우 어렵지만 부분은 가능하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러나 코기토를 실상 부버도 하고 있고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도 했다. 뛰어넘었다고 생각하지만 코기토는 인간이 사유를 하는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유를 점점 제한해서 남는것은 나와 너라는 언어철학밖에 남게 된다. 나와 너 만큼 나와 너 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알레고리도 마찬가지지만 인간은 사유를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해야한다. 나와 너는 또한 여러 헛점이 무엇이냐면 자기가 코기토를 해놓고 나와 너로 철학했다고 실수를 할수 밖에 없다. 본회퍼도 이런 맹점이 있다.  

 논리적으로 나와 너를 하나님인 너만 하는 철학이라고 칼바르트를 설명한다. 이는 이렇게 문제 삼을수 있는데 글쓴것은 칼바르트다라고 설명할수 있다. 나만 하는 철학은 불트만이 그렇다고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다른 고대 문헌이 너로 존재한다. 더 이상적인 것으로 설명하자면 나와 너를 동시에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타자화 시키는데 이것은 이미 가능하기도 불가능하기도 하다. 이미 신학을 한다는 것은 계시에 순종하거나 대답하는 것이거나 논쟁을 벌이는 것인데 나와 너가 실현되는 장소이기도 아니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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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 완역본 하서 완역본 시리즈 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남준 옮김, 이기식 해설 / (주)하서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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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유명한 걸작 파우스트 그러나 그가 말하려던것은 무엇일까? 쇼펜하우어가 성경보다 뛰어난 걸작이라고 말할 가치가 있는 책인가 궁금하다. 괴테가 이책을 쓰기 위해 몇년을 소비 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꽤나 긴 시간동안 이 글을 쓴것을 알수 있다. 맨처음에는 메피스토펠레스와의 대화가 주로 나왔다. 그리고 그 다음은 다신론과 흡사한 범신론으로 모든 신들과 신화를 총 망라한다. 이를 통해 위대함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여주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이 내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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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Paperback, 471)
Wittgenstein, Ludwig / Dover Pubns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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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철학 논고 그야말로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전기를 집대성한 책이다. 이를 통해 알수 있는 것은 우리가 철학을 하면서 하는 논리의 헛점을 지적하고 있다. 명제론은 버트란트 러셀에게 배운것이다. 아쉽게도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협업하는 러셀의 모습을 생각할수가 없다. 루드비히는 모든 세상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비트겐슈타인은 전방위 천재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신이 배운 수학으로 비행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이로인해 제한할수가 없다. 철강회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형이 음악하다가 재능으로 인해서 자살을 하게 되고, 천재라고 생각되는 인물들에게 집착을 많이 했다. 자신도 천재가 되고 싶은 상태였다고 증언에 따르면 그렇다는 걸 알수가 있다. 중요한것은 이사람처럼 천재가 되고 싶다면 롤모델로 삼고 부단히도 노력하면 놀라운 경지에 오르기 충분하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논리학으로 대표되는 삼단논법이 이상해 보일수밖에 없다. 두가지 명제가 맞아서 연속적으로 명제가 맞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수밖에 없을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언어에 대한 철학이지만 언어가 이중으로 맞고 틀리고를 정할수가 없다는 것이다. 삼단논법은 그림으로 표현되어서 정반합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냥 내생각이지만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삼단논법의 정점이 정반합을 이야기하는 헤겔이라고 할수 있다. 즉 삼단논법이 정반합으로 표현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를 폐기 시키고 철학을 언어에서만 나타나는 보이는것에만 한정적인 철학을 하려고 하지만 이는 즉시, 철학을 암살하려는 그의 의도를 엿볼수 있다. 논리학의 폐기 그로 인해 발전되는것은 언어만 남게 되었고 파리가 껍데기만 사유하게 하는 철학을 암살하는 일을 하게 된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썰을 풀어보자면 왜 그는 철학을 암살하려 했을까? 그야말로 그의 시대가 그럴수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러나 그 모든것은 사탄의 유혹이라고 말할수 밖에 없다. 토론하지않고 생각을 하지 않고 모든생각을 폐기 하는것은 또다른 유혹이었다. 전쟁이 코기토로 대표되는 데카르트의 결단으로 된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고 그로인해 발전한 헤겔의 정반합이 극단이라면 이는 잘못된것이 아니라 발전을 해야 하지만 그는 발전하는 길을 선택해주지만 점점 내가 보기에는 사고를 제한하는 행위를 2017년에 주류가 아니지만 주류가 될 가능성을 가진 나와 너까지 이어져 있다.사고를 제한하는 것은 우리의 두려움때문에 그렇지만 이는 허튼 짓거리로밖에 안보인다. 나도 코기토로 하는 강의를 본적은 있지만 없어지지도 않고 코기토로 설명되는 강의는 더 많은 인기를 얻게 되는 결과만 보게 된다. 한마디로 비트겐슈타인의 의도는 실패 한게 분명하다. 이해도 못시켰지만 이해 못시킨것은 그의 실패를 가려주는 그의 어려운 자기만의 생각일뿐이었다. 논리철학 논고 그야말로 논리에 대한 그의 입장을 하나로 간추려진다. 말할수 없는 것들은 침묵하라. 또 이상하겠지만 그의 후예들이 논리실증주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들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을 입다물고 있는게 아니라 논리를 통해 증명할수 있는 일만 더 만들어 더 어렵고 난해한 헛소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논리 철학 논고에 대해서 비판을 하자면 그의 의도가 어쨋든 이책은 맨마지막 말만 남고 전혀 기억나지 않을정도로 단순한 문제가 아닌것을 정리했다. 물론 그의 글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상하지 못한것 같다. 이책을 이해했다 아니다를 판단하기 위해선 마지막말의 유무를 따져선 안될것이다. 중간에 나와 있는 논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색깔명제로 따지자면 그의 중간에 나온 헤겔과 결합한 논리 구조는 어불성설과 터무니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통해 전기 후기 철학이 나뉘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난게 된다. 천재지만 그도 실수 했다는것을 모르고 있다. 색깔 명제란 노란색과 파란색이 결합하면 노란색 부분 파란색 부분이 나오는게 아니라 정과 반이 합쳐서 합이 나오는게 아니라 아예 다른 합 아예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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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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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이 기괴하고도 난해한 책의 중심에는 기다림이 있다. 기다리지만 그 존재는 더이상 오지 않았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다림뿐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과 소년이 나온다. 여기에서 중요한것은 여러이야기를 하고 성경을 인용하는데 그 부분은 예수가 올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구절이 있다. 한마디로 인간에게 주어진것은 올거라는 한마디 말뿐이다. 그러나 그 기다림에서는 끝내 오지 못하고 끝난다. 여기서 무신론자는 기회로 삼아 보라 이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이를 비판하는 구절은 없지만,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은 그 사유로서의 전환을 기대하게 한다. 여기서 고도는

Godot이다 여기서 ot를 빼면  God이다. 유신론증에 대해서 끊임없는 논쟁을 부추기는 글이다. 한마디로 신은 있어도 오지 않는다를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 있다. 우리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사후세계를 언급하지 않고 끝만을 강조한다.

 사무엘 베케트의 의도는 신있는 삶과 신없는 삶 그 두가지도 피할수 없는 존재의 피안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비판하자면, 신은 기다리면 안나타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마음을 먹고 성령님을 초청하여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이 있다. 즉, 성령은 신이고 그것을 부르면 온다는 것이다. 성령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영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3위 일체가 온다는 것이다. 사후세계에 대한 필연적인 과정은  죽음 이후의 인간이 가야 할곳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천국과 지옥은 존재하며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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