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마르틴 부버 지음, 김천배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197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 교의학의 맹점과 한계는 이책으로 정해졌다고 보는게 분명하다. 아니면 에브너가 말하는 나와 너가 정해놓았다. 나와너가 무슨 이야기냐고 하자면, 나는 너와 대화를 해서 이루어지는 혼자서는 있을수 없는 존재라는것을 증명해주고 이 두사이는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로 되는 기본 사유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에브너는 나와 너는 호격과 1격으로 대표되는 형식으로 말해야 된다. 그리고 모든 사고를 이를 통해 할수 있지만 제한적이다. 또한 나와 그것의 사이는 상대방을 잘 모르고 인격적인 사유를 하지 못하게 하는 못하게 가로 막는 일을 하게 된다. 나와 너의 사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존재 방식지만 이 존재방식을 추구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사고가 코기토로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를 망치거나 부분만 아는게 아니라 전체를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에 코기토보다 나와너로 사고 하고 싶다고 하는게 이 책이다. 또한 나와 너로 인과론이 맞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을 보면 아주 흥미로웠다. 사실 이책을 한번에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와 너로 인격적으로 사유하자이다.

 현대 교의학은 왜 이 철학적 신학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즉슨 헤겔과 니체로 이어지는 현대철학의 간악함을 한번에 잠재우고 있는 두철학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를 대표하고 그들을 전승해서 사유를 전체를 파악한다는 의도와는 달리 사유의 축소를 하게 되는 철학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진리의 한부분만 보지않고 전체를 계승할수 있는것인가? 하기 매우 어렵지만 부분은 가능하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러나 코기토를 실상 부버도 하고 있고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도 했다. 뛰어넘었다고 생각하지만 코기토는 인간이 사유를 하는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유를 점점 제한해서 남는것은 나와 너라는 언어철학밖에 남게 된다. 나와 너 만큼 나와 너 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알레고리도 마찬가지지만 인간은 사유를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해야한다. 나와 너는 또한 여러 헛점이 무엇이냐면 자기가 코기토를 해놓고 나와 너로 철학했다고 실수를 할수 밖에 없다. 본회퍼도 이런 맹점이 있다.  

 논리적으로 나와 너를 하나님인 너만 하는 철학이라고 칼바르트를 설명한다. 이는 이렇게 문제 삼을수 있는데 글쓴것은 칼바르트다라고 설명할수 있다. 나만 하는 철학은 불트만이 그렇다고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다른 고대 문헌이 너로 존재한다. 더 이상적인 것으로 설명하자면 나와 너를 동시에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타자화 시키는데 이것은 이미 가능하기도 불가능하기도 하다. 이미 신학을 한다는 것은 계시에 순종하거나 대답하는 것이거나 논쟁을 벌이는 것인데 나와 너가 실현되는 장소이기도 아니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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