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탐구 비트겐슈타인 선집 4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영철 옮김 / 책세상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암살자라고 불리워도 될만한 아주 재미 있는 철학자이다. 거의 완벽한 천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 사람으로 말할거 같으면 그냥 가족 자체가 철강기업을 소유로 한 아버지 밑에서 음악적 천재 철학적 천재가 다 나오는 엄청난 사람이다. 근데 이사람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져서 사람들은 논리 실증주의나 다른 언어놀이에 대한 사유를 하지 않는것 같다. 우리가 만약에 물병속에 갇힌 파리라면 파리가 다니는 공간은 철학적 세계이고 그 껍데기가 바로 언어라는 것이다. 사실 언어에 대해서 그다지 많은 사유를 하지 않는 것을 꼬집어 말하는 이 천재의 반향은 실로 대단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한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다면 니체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철학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먼저 이 철학자의 위치를 다 떠나서 이책의 내용은 한마디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 우리안의 주관성(문법)을 파악하여 새로운 용어로 우리가 하는 철학을 하자라는 이야기이다. 사실 인간의 언어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인간의 싸움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이런 언어적 오해로부터 시작이 되고 그 개념적 고찰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일이 가장 잘 일어 나는 곳이 바로 정치판이다. 말끝을 가지고 이리 조리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도 그런 사람중에 한명이기도 한다. 아무튼 철학적 탐구 어려운 책은 아닌거 같다.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끊임없이 반복해나가며 말하는 책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못마땅한것은 자신이 논리 철학 논고를 통해서 비판받아 온 것들을 다시 세우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논리 철학 논고에서 일으킨 오해들로 인해서 생긴 것들을 고찰하려고 이글을 썻다. 가장 인상깊은 것들은 우리는 고통 받는자들과 똑같은 고통을 받아도 주관성으로 인해 다른 해석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언어 놀이는 가다머가 말하는 해석의 단계와 비슷하다. 선이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가다머의 철학과 비슷하지만, 다른것은 그냥 철학을 송두리째 망가 뜨릴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 우리가 말하는 명제와 그 명제의 참됨은 인간마다 주장하는 것들에 따라서 변하기도 없어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과연 문법으로만 설명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철학자이다. 정작 해제를 보면 문법을 잘 알아야 하는 것처럼 나오지만 사실 문법이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삶의 정황에 따른 이해의 엄밀성이라고 정의 하는게 더 좋아 보인다. 


비트겐슈타인 너무 어려워 보이지만, 그렇게 위대한 사유를 했다고는 느껴지지는 않는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연속상에 끼워져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언어놀이라는 것이 과연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서 새로운 사유로서의 길을 창제 했다기 보다는 그냥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철학의 암살자와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면 그를 생각하고 사유하는 레이몽크나 강신주나 모든사람이 그의 철학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저 그의 삶에 집중하여 논의를 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언어놀이에 가서 그 사유를 시작하는게 아니라 그의 천재적인 삶에 대한 고찰에 그치는 아주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준다. 여태 들었던 모든 번역본이라던가 해설을 하고 있는 놈들이 지식장사꾼마냥 잘난체 하면서 그냥 그의 철학은 일언지하 말로 꺼내지도 않고 이해하지 못함을 드러내면서 자신은 이것도 이해했다는 아주 더러운 자랑만 늘어뜨리는 놈들이 많다. 솔직해지자, 하이데거나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무류성을 주장하는게 아니라 오류를 명백히 드러내며 침묵을 주장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철학적 탐구도 그의 천재성을 드러내기 위한 제자들의 글 모음집에 불과하지만, 너무 천재라서 그럴까 그의 의도에 맞게 철학한 사람은 보여지지가 않다. 하나의 명제에 대한 믿음 확신 참됨을 주장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주관에 따른 새로운 개념창제 이것의 부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의도하는것들이 너무 하찮게 느껴진다. 언어놀이를 설명하면서 가장 인상깊에 보이는 장면은 고통에 대한 사유를 손봉호 교수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 했지만 이사람은 했다는게 느껴진다. 고통이라는 언어에서 이해하는 정도와 척도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그의 주장은 나에게 너무나도 좋은 자극제가 된것 같다. 그렇다 모든고통은 수동적이고 개인적 주관성에 매여 있다. 고통과 수열 인간의 수학이라는 도구에서까지도 그는 하나의 정립된 의미가 있지가 않다는 것이다. 물어보고 싶은것은 현대 수학에서 무한에대해서 다루는데 인간이라는 극도로 연약한 존재가 무한을 다룰수 있는 통찰력이 있는가라고 물어보고 싶다. 그저 인간은 연약한 이성을 사용해서 그 껍데기 밖에 사유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을 읽고 사유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경고한다. 이사람도 그냥 사람이다. 그냥 어렵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사고에도 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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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5-08-23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트겐슈타인 왠지 어려울것같지만 리뷰를 보니 이 책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