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 - 20세기 신학의 교부, 시대 위에 우뚝 솟은 신학자 하나님의 사람 14
에버하르트 부쉬 지음, 손성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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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의 제자 에버하르트 부쉬의 글이다. 이 책은 칼바르트에 대한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조명하여 그 사람을 기리기 위해서 쓴글이다. 칼바르트는 어렸을때는 자신이 생각치 못했겠지만, 지독하리 만큼 자유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던 자이었다. 칼바르트의 아버지는 프리츠 바르트로 신학을 하였지만, 당연시 여기기 쉬울 만큼 자유주의 사상에 심취했던 사람이었다. 칼바르트는 그런 배경에서 컸고 아버지 영향 아래에서 컸다. 또한 헤르만과 하르낙이라는 자유주의의 걸출한 신학자 밑에서 제자가 되어 공부를 했던 사람이었다. 칼바르트는 또한 젊은 나이에 사회주의 진영에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 나갔고 급진적인 정치적인 사람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가 바랬던 세상은 아무래도 자본주의의 악이 제거된 밝은 사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갔고 그가 바라던 대로 가지 않았다. 칼바르트는  자신이 살았던 스위스 동네에서 보다 교수로 초빙됬지만 거부했고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많다. 칼바르트는 자신들의 스승이 전부 나치에 가담했고 그 충격으로 인해서 그들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칼바르트는 블룸하르트라는 목사의 설교를 듣고 감화 받아서 자신의 사상을 전부 뒤엎고 자유주의에서 경건주의로 돌아가게 되는 근본적인 계기가 되는 로마서 강해를 쓰게 되었다. 현실 기독교에서 우리나라 합동측과 고신측이 상당히 칼바르트를 비판하며 나오는 이유중의 하나가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의 사상보다는 칼바르트를 추종하는 세력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칼바르트는 자신을 칼빈의 제자라고 표현 하기 까지 하며 경건에 힘을 쓴 보수적인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가 제시하는 모든 사상에는 동감하지 않지만, 그가 주장하는것 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부인할수가 없다. 칼바르트는 괴팅엔대학교에 먼저 초빙되어 많은 나날을 보냈고 그에게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또한 본대학교에서 보낸 시절이 있었고 바젤대학교까지 자신의 학적인 생활을 많이 유지해나가며 살아갔다. 칼바르트의 생애중에 거의 절반이상이 교회교의학을 쓰는데 보냈다는 것을 여기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모든 생애를 덮고도 남는 분량의 책을 쓰기 시작했고 그 책은 세상을 바꿨다. 먼저 로마서 강해로 세상을 바꾸었다고 보는게 맞지만, 난 이책이 다시 세상에 읽혀지기를 바라고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9200페이지 가량의 분량의 책을 연구하기도 생각하기도 매우 어려운 작업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일을 해야 하는것이다. 참고로 이책도 850페이지 가량의 책이라서 읽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책이다. 칼바르트는 생각과는 매우 다르게 이 책에서 보이는 면은 괴팅엔에서부터 보수주의적인 생활을 유지해나가며 경건에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칼빈의 사상을 강의하는데 많은 힘을 썼고, 에큐메니컬 운동에도 힘을 쓴 사람이다. 칼빈과 루터에 대해서 상당한 힘을 써 생각해나가며 여타 교리에 대한 반감보다는 발전으로의 힘을 쓰기에 노력했다. 자신의 생애중 거의 대부분을 교회교의학을 썼지만, 이 교회교의학도 맨처음에는 그리스도 교의학이라는 이름을 거쳐 교회교의학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교회교의학은 다시 읽혀져야 되고 읽어야만하고 누군가가 번역을 해야되는 책이다. 칼바르트는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정치적 일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자신이 이야기 하는 목사는 한손에는 성경책과 한손에는 신문이 들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바르멘 신학선언과 에큐메니컬운동 사회주의가담 초핑기아 회원등의 모든 일들을 겪으며 살아갔다. 

 

 한사람의 인생이 전부 기록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책을 읽으면서 느끼는점은 칼바르트는 정말 자신의 영혼을 불태울정도로 신학에 몰두한 사람이라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교회교의학을 쓰기 위해서 자신의 생을 다 바쳤다고 이야기 해도 과언이 아니고 정말 열정적이게 자신의 생을 살았다. 그가 쓴 책은 거의다가 두껍고 재미 있는 내용들이 많다. 나도 그 여정을 나가기 위해서 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그가 비판 받아야 하고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엄청난 비판을 쏟아내고 사람들에게 수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건주의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이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을때는 그의 과감성은 어쩌면 대단하다고 느껴져야 한다. 신학자가 신성모독이라는 잘못된 일을 할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학을 전개해 나가는데 거침이 없이 하는 그의 모습은 단연코 열정적이었따. 자유주의의 거성 슐라이어마허와 그는 평생을 싸웠다고 이야기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를 비롯한 불트만 학파와의 사람들과도 불트만과도 항상 대화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 칼바르트이다. 그의 밑에서 공부한 사람은 에버하르트 융엘, 본회퍼 등 시대를 개혁한 신학자들을 배출해냈고 엄청난 이야기가 오간것으로 안다. 자연신학을 거부하려던 것을 비판하는 에밀 부르너와의 대화에서도 Nein이라고 아니라고 대담하게 말하는 신학자였다. 그의 신학은 깊이가 깊으면서도 광대했다. 자신도 실존주의 철학에서 비롯하는 신학을 전개해나가고 있지만, 실존주의 철학가 하이데거로 비롯한 불트만의 신학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도전을 하는것은 무리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그보다 뛰어난 신학을 전개한 사람이 없다면 어쩔수 없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그러나 실존주의 신학에 대해서는 커다란 의문을 가졌고 여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커다란 질문을 남긴채 모든것이 무로 돌아가는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경건의 길을 걸어가는 복음주의의 한 거목임을 부인할수가 없다.

 

 칼바르트를 비판하자면 많은 비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사람이 비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기때문이다. 교회교의학이라는 거대한 저작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많은 비판을 남기는 이유가 그가 한 행위때문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는 열정적이다. 그러나 덤벙댄다. 이 책에서는 학생들을 가르키는데 이 천재가 매우 덤벙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기억력이 좋지 않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냥 일필휘지 하나의 내용에 글을 쓰는 천재적 유형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는 너무나도 많은 글을 써서 뒤에서 평가가 좋지 않는 유형중의 하나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를 연구하려면 아직 남은 200년 이상의 기간이 지나야 제대로된 평가를 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코넬리우스 반틸은 그의 책을 읽지도 않았고 그저 그를 추종하던 자유주의 세력들이 하던 얘기로 그를 보았고 그에 대한 오해만 주구장창 하는 사람이었다. 바로 그 이유가 그의 책을 읽을 엄두가 잘 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아주 힘들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 쓰니 니체라는 사람도 100년이 지나야 자신의 진가가 드러난다고 이야기 했지만, 그는 그 당시에도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향후 몇년간 아주 중요한 인물로 부각될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트만은 하나의 넘어야 할 산으로 인식되고 넘어가버린 사람인 케제만과 같은 신학자가 이미 존재한다. 칼바르트의 신학시절 강의를 하면서 듣는 학생은 많았지만, 그에 대한 사상을 제대로 물려받은 신학자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불트만과 같이 대단한 신학자들을 남겼다기 보다는 그냥 다른 사상을 이야기 하는 신학자들만 배출해 낸 사람이다. 칼바르트 한사람을 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그럴러면 이 많은 텍스트를 하나하나씩 격파 해 나가야 되는 임무가 주어져 있음을 인식해야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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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니체전집 13
프리드리히 니체 / 책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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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떠한 덕에 사로 잡혀 살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이 덕을 깨부셔도 반복되는

영원회귀의 연속굴레에 갇혀있지는 않는가? 거기서 남은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힘에로의 의지 그것밖에 없는 이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니체의 해석 그 중의 하나가 되려 하는 이 어리석은 우를 나도 범하려 한다..

니체의 책들을 여러번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이지만 그는 형이상학의 완성자라고 이야기 하는

하이데거의 명철한 분석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니체의 생기 존재론을 더해 힘에로의 의지 덕을 파괴하고 나서 남은 잔재들간의

덕을 다시 만들고 파괴하고 반복하는 그런 끝을 그린 영원회귀와의 관계가

아주 재미있게 그려지고 있다..

 

우리는 그렇다면 덕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혹은

덕을 파괴하여 그것을 극복하는 힘에로의 의지의 위버멘쉬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위버멘쉬도 결국은 영원회귀 안에 있는 덕을 창조하는 자들과

다른 존재이겟지만, 위버멘쉬에로의 덕은 완성되어 또다시 덕을 창조하는게 아닌가

 

결국 남은것은 힘에로의 의지 그자체만 남고 세상은 돌고 돌고 영원회귀를 하는

그런 사유의 완성을 통해서만 돌아간다고 볼수가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그렇게 말했다고 어떻게 말했는지에 대한 나의 해석이자

 

덕을 따라가려 하는 나의 위버멘쉬적 고찰에 머무르지 않는 나에게 유익하지

않는 그런책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렇다면 니체는 형이상학자인가 실존론자 인가 그는 신체를 이야기 하며

실존을 이야기 하고 있고 영원회귀로의 사유의 극단으로 실존을 보여주지만

 

위버멘쉬와 같은 힘에로의 의지는 형이상학으로 남아있지 않는가 반문하고 싶다.

그의 사유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힘에로의 의지라는 주저가 완성되어야 했고

억지로 힘에로의 의지에 모든것을 끼워 맞추려던 노력조차 없어야 할것이다.

 

모든것이 하나의 설명으로 이루어진다는 원대한 꿈은

하나의 설명이 그저 높은차원의 형이상학적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망각하여 자신의 지적 결벽증과 함께 자멸하는 실존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일어나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 집중하고 그사유에 대한 구경을 하고 싶다면

높은 차원의 사유를 구경하고 칸트와 같은 덕을 파괴하는 높은 차원의 것들을

살펴 보고 싶다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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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한길컬처북스 2
이부영 지음 / 한길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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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뭘까나  

 

아무래도 융심리학의 그림자이기도 한 그런 개념이다..

이부영 3부작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자기 자기실현 중에서 그림자를 쓰는 이유는 그림자가 쉬워보여서라기 보다는 아무래도 이게 가장 나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기 그림자하고 잘 관리되지 않으면 심리적 투사로 상대방을 짓눌러버리고 남탓으로 죽이고 하는게 그림자다. 특히나 이 그림자를 제일 많이 사용한게 히틀러라고 이야기 한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보이는 돈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비판하며 명예를 추구하며 사람들을 조종하는 자기 모습과 제일 비슷한 유대인 우월주의에 빠진 유대인들과 전혀 다르지 않게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투사를 하여 유대인들을 학살하는데 참 재미있게도 학살은 성공하지 못한다. 유대인들은 참 질긴 운명이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긴 한거 같다. 너무나 고통을 많이 당하고 웃긴거 같다. 근데 어찌저찌 보면 독일인과 유태인은 많이 닮은거 같다. 그들의 근면성과 속된 모습등 모든게 비슷하다. 종교성이라는 차이만을 두고 선민사상과 기독교인이라는 자부심 이라는 모습이 매우 비슷하다....

 

그림자책에서 다른 내용도 많이 나오는데, mbti의 시조격인 내향사고형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이거는 아무래도 융의 자기 고백으로 보여진다. intp로서 ti를 사용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를 분석하다가 나온 사고인데 이게 성격심리학의 초기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 였다는 점이다. 물론 마이어스 브릭스가 만들긴 했어도 아이디어의 시초는 융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그림자책에선 이런 내용이 나오지만, 정작 그림자얘기하는데 왜 이런것이 쓰여진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그림자라는 것이 페르소나가 크면 클수록 생기는 자신의 어두운 부분이니까, 자신의 성격과 관련이 있는것인지 모르겠다.

 

이부영이라는 사람도 융심리학을 하는 사람인데, 번역본을 보다가 이사람이 번역도 했다는것을 봤다. 그만큼 이책은 융심리학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런 책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물론 필자는 융심리학에 대가는 아니다. 또한 책도 4권정도 읽고 이해했다고 자평하는 정도지만, 융심리학은 좀 어떻게 보면 종교적이기도 하지만 종교적이지 않고 신학적이기도 하지만 인간중심적인 능력을 중시하는 인문학적인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심리학이라고 느껴진다. 꿈에 대해서, 신화에 대해서, 지나친 망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융심리학으로 꿈 해석하는 것이 사례를 통해서 극복이 되었다는것이 맞겠지만, 그 해석이 과연 정당하냐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융심리학에서 말하는 꿈은 타자는 나오지 않고 자아만 이야기 하는 경향이 있다. 꿈에 나오는 타자는 내속의 타자의 면을 보여준다는 얘기가 핵심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서 예지몽을 꾸는 사람들의 영적인 민감성이나 역사적인 꿈 해석이나 신화해석을 보면 타자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는것은 매우쉽다. 심지어 내 부모님이 꾸는 나를 위한 꿈이 과연 어머니께서 나의 모습을 가지고 겪는 나에 대한 소망의 꿈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해석방식에 의문을 제기 하기 쉽게 해석방식이 주어진다. 집단무의식적인 고통과 인내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꿈에 발현된다고 이야기 하면 매우 쉽게 느껴지지지만 꿈은 타자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것 같다.

 

여기서 그림자에 대한 꿈에 현현이 나오는데, 과연 그게 내안의 나의 또다른 이면일까, 투사일까하는 의문은 전혀 가시질 않는다. 내모습이기도 하지만, 타자성과 다른 존재에 대한 인정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을 간과 해서는 안된다. 융과 프로이트의 단점은 그것이다. 모든 문제를 나의 소망이나 나로부터 출발하고 나이외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 그림자를 투사의 하나의 기제로서 보는 견해가 있는데 투사를 너무 과대하게 생각해 내면화 시키지 않았는가 싶다.

 

신학적으로 보자면 나의 존재에 내면안에 있는 문제를 너무 과대평가하여 다른 존재의 영향을 인정하지 않는듯한 느낌이 든다. 악마의 모습 조차도 우리가 인식하는 내면의 자아의 모습이라면 우리의 이면의 모습이 있다는것을 밝히기는 했지만, 악마적 존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우리의 육이 타락 했음에 분명하지만, 육이라는 관점과 영적인 관점이 분리되어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융의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아쉽기도 하다. 마틴부버의 나와 너의 관점으로 보자면 우리는 나라는 관점을 지니고 있어야 하겠지만, 신과 영적 존재라는 너를 인식하고 그들의 심리학적 접근과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것이 나에게 답이 있다는 관점은 다른것이다. 라마누잔이 자신의 수학적 발견이 신이 가르쳐준 것이라고 이야기 한것처럼 자신의 내면의 자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타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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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의 숏컷 - 개정 증보판
김지운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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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면서 김지운 감독이라는 사람의 일면이 이런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크게 고민하지 않으면서 생활속에서 이렇게 생각했던것 저렇게 생각했던것을 표출하기위해 영화라는 장르를 선택한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일종의 귀차니즘에 빠진 예술가라고 생각이 듭니다. 예술이라는것이 생활이지 심오한 고민에 거쳐서 나오는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듯한 어법과말투 그런것 같습니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영화를 만들면서 배우가 가져야 하는태도나 배우에 대한 존경심이라는것도 흘러가면서 캐치해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배우라는 하나의 동반자적 입장에서 취해야할 전형적인 친구의 태도를 갖추려고 했던것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혼자였던 백수생활에서 어쩌다 발견한 꿈으로 했던 영화감독이기에 배우에게 영화에서 연기라는것을 어떻게 이끌어내는가 라는것도 어쩌다가 찍다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라는것 같다.

 

"어쩌다 보니 영화를 찍으면서 그렇게 나왔다"라는것이 거만하고 자랑이라고 착각하면서 끌어내리려고 하는 사람이 일반 대다수의 군중이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자랑속에서도 이끌어지는 배우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짧은 시간에 시나리오를 쓴만큼 작품을 만들면서 완성해가는게 영화라고 소리치며 겸손해하는듯한 어투를 영화제작을 하면서 느꼇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됫어요 하기보다는 생활속에서 그는 어쩌다 보니 쉬는 일이 그것이 영화에 관한 일이었고 어쩌다보니 했던 일상이 자신의 직업이 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김지운의 천재성과 어떻게 영화라는게 저렇게 나올수 있는가와

김지운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그사람이 영화라는것을 통해 나는 당신의 친구요라고 가깝게 돌아오는 책이 이책인거 같다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읽으면서 아 이런 사람이구나 느끼는 이책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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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몽타주
박찬욱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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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기에는 이사람의 시간이 모자른듯 한다.

영화하기에 바쁜데 이걸 뭐하러 쓰나라고 말하는듯 하다.

 

영화라는게 어떻게 한다기 보다는 일상적 일기에 가까운 글과 입아프게 인터뷰해서

좋은것만 추려서 이책을 만들었다.

 

그만큼 그가 했던 말을 신중하게 했던 것이기도 하거니와 글을 잘쓰기도 한다는것이다. 바쁜생활에서 여유를 찾을수 없듯이 그는 바쁜 일정과 인터뷰에 지쳐 이제 더이상 이야기 하기 싫고 살기 위해서 이글을 쓴다라고 이야기 하는듯 한다.

 

영화만을 사랑하고 영화만을 하고 싶어서인지 몰라도 영화에 대한 애정은

두드러지지만 일상생활에서의 잔혹함?은 이책을 보는 입장에서는 좀 힘들다.

나도 영화감독이 되면 저렇게 해야되나? 라는 의문도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여튼 글이라는게 거짓말이 어떻게 해서든 생길수밖에 없는것이기에

 

말을 하기가 싫은 투가 짙어 보인다

이거 하기는 싫은데 먹고 살라면 어쩔수 없다.라고 하는듯하다..

 

한국의 기형적 구조의 영화감독의 생존을 위한 책이라고 밖에

그러나 이책에서는 영화는 무덤위에서라도 하고 싶어요라고

이책은 소리친다.

 

천재감독의 생존기는 처참하기는 하지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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