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한길컬처북스 2
이부영 지음 / 한길사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그림자는 뭘까나  

 

아무래도 융심리학의 그림자이기도 한 그런 개념이다..

이부영 3부작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자기 자기실현 중에서 그림자를 쓰는 이유는 그림자가 쉬워보여서라기 보다는 아무래도 이게 가장 나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기 그림자하고 잘 관리되지 않으면 심리적 투사로 상대방을 짓눌러버리고 남탓으로 죽이고 하는게 그림자다. 특히나 이 그림자를 제일 많이 사용한게 히틀러라고 이야기 한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보이는 돈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비판하며 명예를 추구하며 사람들을 조종하는 자기 모습과 제일 비슷한 유대인 우월주의에 빠진 유대인들과 전혀 다르지 않게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투사를 하여 유대인들을 학살하는데 참 재미있게도 학살은 성공하지 못한다. 유대인들은 참 질긴 운명이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긴 한거 같다. 너무나 고통을 많이 당하고 웃긴거 같다. 근데 어찌저찌 보면 독일인과 유태인은 많이 닮은거 같다. 그들의 근면성과 속된 모습등 모든게 비슷하다. 종교성이라는 차이만을 두고 선민사상과 기독교인이라는 자부심 이라는 모습이 매우 비슷하다....

 

그림자책에서 다른 내용도 많이 나오는데, mbti의 시조격인 내향사고형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이거는 아무래도 융의 자기 고백으로 보여진다. intp로서 ti를 사용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를 분석하다가 나온 사고인데 이게 성격심리학의 초기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 였다는 점이다. 물론 마이어스 브릭스가 만들긴 했어도 아이디어의 시초는 융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그림자책에선 이런 내용이 나오지만, 정작 그림자얘기하는데 왜 이런것이 쓰여진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그림자라는 것이 페르소나가 크면 클수록 생기는 자신의 어두운 부분이니까, 자신의 성격과 관련이 있는것인지 모르겠다.

 

이부영이라는 사람도 융심리학을 하는 사람인데, 번역본을 보다가 이사람이 번역도 했다는것을 봤다. 그만큼 이책은 융심리학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런 책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물론 필자는 융심리학에 대가는 아니다. 또한 책도 4권정도 읽고 이해했다고 자평하는 정도지만, 융심리학은 좀 어떻게 보면 종교적이기도 하지만 종교적이지 않고 신학적이기도 하지만 인간중심적인 능력을 중시하는 인문학적인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심리학이라고 느껴진다. 꿈에 대해서, 신화에 대해서, 지나친 망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융심리학으로 꿈 해석하는 것이 사례를 통해서 극복이 되었다는것이 맞겠지만, 그 해석이 과연 정당하냐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융심리학에서 말하는 꿈은 타자는 나오지 않고 자아만 이야기 하는 경향이 있다. 꿈에 나오는 타자는 내속의 타자의 면을 보여준다는 얘기가 핵심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서 예지몽을 꾸는 사람들의 영적인 민감성이나 역사적인 꿈 해석이나 신화해석을 보면 타자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는것은 매우쉽다. 심지어 내 부모님이 꾸는 나를 위한 꿈이 과연 어머니께서 나의 모습을 가지고 겪는 나에 대한 소망의 꿈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해석방식에 의문을 제기 하기 쉽게 해석방식이 주어진다. 집단무의식적인 고통과 인내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꿈에 발현된다고 이야기 하면 매우 쉽게 느껴지지지만 꿈은 타자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것 같다.

 

여기서 그림자에 대한 꿈에 현현이 나오는데, 과연 그게 내안의 나의 또다른 이면일까, 투사일까하는 의문은 전혀 가시질 않는다. 내모습이기도 하지만, 타자성과 다른 존재에 대한 인정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을 간과 해서는 안된다. 융과 프로이트의 단점은 그것이다. 모든 문제를 나의 소망이나 나로부터 출발하고 나이외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 그림자를 투사의 하나의 기제로서 보는 견해가 있는데 투사를 너무 과대하게 생각해 내면화 시키지 않았는가 싶다.

 

신학적으로 보자면 나의 존재에 내면안에 있는 문제를 너무 과대평가하여 다른 존재의 영향을 인정하지 않는듯한 느낌이 든다. 악마의 모습 조차도 우리가 인식하는 내면의 자아의 모습이라면 우리의 이면의 모습이 있다는것을 밝히기는 했지만, 악마적 존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우리의 육이 타락 했음에 분명하지만, 육이라는 관점과 영적인 관점이 분리되어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융의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아쉽기도 하다. 마틴부버의 나와 너의 관점으로 보자면 우리는 나라는 관점을 지니고 있어야 하겠지만, 신과 영적 존재라는 너를 인식하고 그들의 심리학적 접근과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것이 나에게 답이 있다는 관점은 다른것이다. 라마누잔이 자신의 수학적 발견이 신이 가르쳐준 것이라고 이야기 한것처럼 자신의 내면의 자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타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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