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돈의 역사 - 명화로 읽는 돈에 얽힌 욕망의 세계사
한명훈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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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여왕은 국가 번영에 관심이 많았고, 식민지 건설에 적극적이었지만, 콜롬버스의 인도 탐험 계획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거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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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펀딩의 귀재 콜롬버스 이야기, 이사벨 여왕의 거절을 그는 그냥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스페인은 포루투갈과 경쟁중이었고, 콜롬버스는 이에 교회 성직자들에게 인도 탐험으로 더 넓은 선교지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내세운다. 결국 교회 성직자들이 이사벨 여왕을 설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루트를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콜롬버스, 펀딩에 천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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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오가와 요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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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소멸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가 이렇게 조용히 사라져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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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소멸도 오지 않았는데, 많은 것들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느끼는 걸까? 지인으로 받은 고급 연필, 아끼느라 깍지도 못한 건데 없다. 그리고 예전에 가지고 놀았던 마론 인형은 어디로 간 걸까? 그 소멸의 기억이 없다. 있다가 조용히 스르르 녹았다. 아마 거기에 건망증도 한 몫 단단히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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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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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의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하나는 빠르고, 하나는 느리고, 강도질과 감시도 마찬가지다. 강도질은 토막고기다. 빠르고 뜨겁게 굽듯이 빨리 치고 빠진다. 감시는 립이다. 불을 낮추고 느리게, 시간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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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를 좋아한다. 음악의 비트에 맞춰 주인공이 운전하는 장면도 좋고, 남주도 꽤 매력적으로 그려졌다. 영화 속 강도장면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신중하게... 방송에서 어떤 강도가 자신이 쓸 가방을 미리 준비하지못해 옷 속에 감추고 나오다가 돈 다발이 떨어져서 잡혔다던데...ㅎㅎ 이건 느리고 빠른 것도 아닌데...무엇으로 설명해야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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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 - 자존감, 나르시시즘, 완벽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윌 스토 지음, 이현경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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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자존감은 이야기가 개인적인 것이 되는 지점이다. 사회학자 존 휴잇 교수의 한 책에서, 나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임무에 나서는 나와같은 사람들이 우리 문화를 맹목적으로 실연하는, 즉 고전적이지만 어리석은 가상의 영웅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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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들, 긍정적인 이야기꾼들과 설교자들, 그리고 사제들은 독자적인 힘을 가지고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 그러한 의미에서 진정한 영웅들은 그들이다. 사실 모든 책에서 우리가 무릎을 치는 순간은 바로 그 책 속의 말들이 우리의 마음을 치료해고 들어주고 있음을 아는 대목에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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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이름 -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
권근영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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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이름

권근영 지음 | 아트북스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

책 표지의 옆 모습, 무언가 말하고자는 눈빛, 하지만 그녀의 입술은 꼭 다물어 있다. 한 여성 예술가의 모습은 정면에 서 있지 않다. 아직 뭔가 덜 여문듯, 아니면 아직은 그 때가 아니라는 듯...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녀는 이미 완성된 예술인이라는 것을... 비록 여성이라는 타이틀에 갇혀있지만 그녀 역시 인간이며 오롯하게, 그리고 온전한 한 몫의 예술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최근 들어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도 많아지고, 각종 문화, 예술계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현대 사회, 여성을 대변하고자하는 많은 의식있는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이면에는 마중물이 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는 것, 너무나 뻔한 말을 다시금 해야하는 현실에서 그 현실을 온 몸으로 부딪혀 멍이 들면서 버티어낸 잊혀진, 그리고 상처받은 여성 예술가들... 노은님, 천경자, 정직성, 베르트, 파울라, 버네사, 박영숙, 유딧, 나혜석, 아르테미시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주목하거나, 혹은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들이 이 책 <완전한 이름>에 펼쳐져있다.

흔히들 앞에서 대놓고 이야기하면 예전 어른들은 여자답게 조신하지 못하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이 그러면 떳떳하다고 하다. 이렇듯 자기 주장성을 남과 여를 다르게 잣대를 세웠다. 파독 간호사로의 생활은 얼마 안되지만 노은님을 이야기할때 항상 붙은 여성 간호사라는 타이틀, 버네사 벨을 말할때 또 붙은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라는 타이틀, 나혜석을 말할때는 어떠한가? 그녀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그녀의 남성 편력을 문제 삼는다. 왜 여자는, 여자라는 타이틀에 갇혀서 살아야하는가?

얼마전 버스를 탔다. 버스 운전사분이 여성분이었다. 운전을 너무도 안정감있게 잘하셔서 급제동을 반복하거나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하는 여타의 버스 운전사 분들과 비교가 되었다. 새삼 그 분이 여자여서 그렇게 운전을 섬세하게 하시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역시 나의 여성성 교육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여성이라서 섬세하다?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냥 그 분은 운전을 잘하는 분이였을 뿐인데 말이다.

여기 나와있는 예술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예술을 사랑했고, 거기에 재능을 가진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여성이라고 뭔가 특출하거나, 혹은 부족하다는 잣대를 가지고 그 속을 들여다 보기 보다는 그들이 가진 삶, 그 시대의 삶에 주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때 인정이라는 단어는 공평하게 들릴 것이고, 빛을 못 본 화가나 예술가들은 다시 빛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젠더 이슈로 새삼 남과 여를 두 동강 내어 서로의 편에 서서 싸우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모두 어머니의 소생인 것처럼 예술 또한 그 누구의 편일 수 없다. 예술로 파생된 남과 여, 인간들... 그러하지만 여자로, 여성으로 그것이 잣대가 되어 평가절하됐던 예술가들... 이제는 다시 이름을 찾아주어야하지 않을까? 누구 누구의 언니, 누구 누구의 딸이 아니라 온전한 그녀 자신의 이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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