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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이름 -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
권근영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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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이름
권근영 지음 | 아트북스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
책 표지의 옆 모습, 무언가 말하고자는 눈빛, 하지만 그녀의 입술은 꼭 다물어 있다. 한 여성 예술가의 모습은 정면에 서 있지 않다. 아직 뭔가 덜 여문듯, 아니면 아직은 그 때가 아니라는 듯...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녀는 이미 완성된 예술인이라는 것을... 비록 여성이라는 타이틀에 갇혀있지만 그녀 역시 인간이며 오롯하게, 그리고 온전한 한 몫의 예술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최근 들어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도 많아지고, 각종 문화, 예술계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현대 사회, 여성을 대변하고자하는 많은 의식있는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이면에는 마중물이 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는 것, 너무나 뻔한 말을 다시금 해야하는 현실에서 그 현실을 온 몸으로 부딪혀 멍이 들면서 버티어낸 잊혀진, 그리고 상처받은 여성 예술가들... 노은님, 천경자, 정직성, 베르트, 파울라, 버네사, 박영숙, 유딧, 나혜석, 아르테미시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주목하거나, 혹은 주목하지 않았던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들이 이 책 <완전한 이름>에 펼쳐져있다.
흔히들 앞에서 대놓고 이야기하면 예전 어른들은 여자답게 조신하지 못하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이 그러면 떳떳하다고 하다. 이렇듯 자기 주장성을 남과 여를 다르게 잣대를 세웠다. 파독 간호사로의 생활은 얼마 안되지만 노은님을 이야기할때 항상 붙은 여성 간호사라는 타이틀, 버네사 벨을 말할때 또 붙은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라는 타이틀, 나혜석을 말할때는 어떠한가? 그녀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그녀의 남성 편력을 문제 삼는다. 왜 여자는, 여자라는 타이틀에 갇혀서 살아야하는가?
얼마전 버스를 탔다. 버스 운전사분이 여성분이었다. 운전을 너무도 안정감있게 잘하셔서 급제동을 반복하거나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하는 여타의 버스 운전사 분들과 비교가 되었다. 새삼 그 분이 여자여서 그렇게 운전을 섬세하게 하시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역시 나의 여성성 교육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여성이라서 섬세하다?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냥 그 분은 운전을 잘하는 분이였을 뿐인데 말이다.
여기 나와있는 예술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예술을 사랑했고, 거기에 재능을 가진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여성이라고 뭔가 특출하거나, 혹은 부족하다는 잣대를 가지고 그 속을 들여다 보기 보다는 그들이 가진 삶, 그 시대의 삶에 주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때 인정이라는 단어는 공평하게 들릴 것이고, 빛을 못 본 화가나 예술가들은 다시 빛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젠더 이슈로 새삼 남과 여를 두 동강 내어 서로의 편에 서서 싸우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모두 어머니의 소생인 것처럼 예술 또한 그 누구의 편일 수 없다. 예술로 파생된 남과 여, 인간들... 그러하지만 여자로, 여성으로 그것이 잣대가 되어 평가절하됐던 예술가들... 이제는 다시 이름을 찾아주어야하지 않을까? 누구 누구의 언니, 누구 누구의 딸이 아니라 온전한 그녀 자신의 이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