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 기분은 철학으로 할래 - 디즈니는 귀엽고 코기토는 필요하니까
마리안 샤이앙 지음, 소서영 옮김 / 책세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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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잘못은 어쩌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왜 동물들이 짖기만 할 뿐 말하지 않는다고 오만하고 섣부르게 결론을 내려버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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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인간이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닐까? 스스로를 파괴하기위해 핵무기를 계발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들을 우리가 먹고, 지배하는 까닭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그렇게 인간이 영특하거나 그 동물들을 지배할만해서 지배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어쩌면 우리 인간도 그냥 거미나, 돼지나, 말이나... 등과 다를 바 없다는 것... 괜스럽게 거창하게 포장하는 것일뿐...동물들이 말하지 않는다고 사실 어떻게 단정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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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유괴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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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자네와 다른 동료들은 잠 못 이루는 날이 이어질 거야.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펼칠 때마다 불안에 떨겠지. 일본 어딘가에서 와펜을 가슴에 단 3천만 명 중에 한 명이 살해되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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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몬지의 계속되는 추궁에 과연 노가미의 생각이 바뀔 것인가? 이쯤되면 모든 것을 실토하고 자백하는 것이 더 나을수도 있지않을까? 천재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사몬지의 말처럼 블루 라이언스 계획의 성공은 곧 또다른 파멸의 시작이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검열해야하는 것... 과연 이 모든 것의 결말은 어떻게 흘러갈까? 그리고 거액을 손에 넣은 노부부의 안전은? 사몬지의 말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 어떻게 그 일을 마무리할지는 지금은 노가미의 입에 달린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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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양장) 앤의서재 여성작가 클래식 2
제인 오스틴 지음, 이신 옮김 / 앤의서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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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 이신 옮김 | 앤의서재 | 앤의서재여성작가클래식

코로나의 상황이 대치되면서 일본에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일명 마스크로 인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커플이 눈만 보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만난지 두 달만에 결혼을 하게 되고 그 후 맨 얼굴에 실망을 느낀 여성의 사연이었다. 인터넷 상으로는 마스크로 인해 얼굴 생김을 제멋대로 판단해버려 그 혼란을 일명 <마기꾼> 즉, 마스크 사기꾼이란 신조어로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얼마전에 지인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는 (그 지인의 말에 의하면) 요즘 여성들이 다 이뻐보인다는 것이었다. ㅎㅎ 마스크로 인해 얼굴 하관 구조를 확인하지 못함으로 눈만 호감있게 생기면 눈 아래로는 다들 자기 이상형으로 생각하니 벌어지는 현상이다.

소설 <오만과 편견> 역시 서로간의 이상형을 찾기라고 할 수 있겠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여인들이 각자 신랑감 찾기를 어떻게 해나가는지 보여준다. 그 시대의 분위기, 여성을 빨리 시집보내야하는 어떤 절박함도 느껴지지만 그래서 전반적으로 보기에 결혼의 주도권은 남성들에게 있는 듯 보이지만 한 여자, 엘리자베스의 경우는 좀 남다르다. 일명 리지는 당차고, 여성이라서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이 스스로 주장을 확실하게 하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다아시에게 닿아서 후에 그가 리지에게 청혼하기에까지 이른다. 하지만 그 과정은 실로 험난했고, 리지와 다아시가 서로에게 극심한 오해와 불신만을 남긴 채 헤어질 뻔한 적도 있었으니... 험난하고도 고된 연애사이다.

과연 오만과 편견이란 무엇일까? 리지가 다아시에게 느꼈던 가진 자의 오만... 그것은 리지가 가졌던 편견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다아시의 오만적인 모습이 그렇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리지의 편견어린 모습 또한 다아시에게는 또 다른 오만으로 보였을 것이다. 다아시의 마스크는 오만이었고, 리지의 마스크는 편견이었다. 흔히들 가진 자는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번의 거만한 태도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뒤업는다. 반면 가진 자가 친절을 베푼다면 그것 또한 또 다른 편견으로 더 과대포장되고 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우리 모두 마스크 혹은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이미 보기 때문이다. 세상을 가장 순수한 눈으로 볼 수 있느 사람은 어쩌면 아무 편견없는 어린아이밖에 없다. 이미 어른이 된 이상 원하든 원치않든 각종 직접 경험치가 쌓이고, 간접 경험치도 쌓여서 편견의 장막이 자연스럽게 내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보는 것에 있어서 어떤 장막을 치고 볼 것인가? 아니면 장막을 걷을 것인가? 참 어려운 문제이다. 장막을 걷자니 내심 불안하고, 장막을 치자니 스스로가 일명 꼰대처럼 보인다. 내 나름의 결론은 장막을 치되 스스로 납득이 될만한 장막을 치자는 것이다. 그 장막이 타인의 말이나 다른 여타에 의해서 조종되어서 결정된 것이 아닌 오로지 내 스스로의 경험치에 쌓여진 일명 방어막이라면 좋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만약 그 장막이 오로지 타인에 의한, 타인에 의해서 쌓여진 것이라면 당장 치워버려야한다. 그것은 스스로의 눈을 멀게 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병들게 함으로 말이다. 어떤 장막을 칠 것인가? 그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의해서 당신의 다아시 역시, 당신의 리지 역시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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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양장) 앤의서재 여성작가 클래식 3
메리 셸리 지음, 김나연 옮김 / 앤의서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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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 김나연 옮김 | 앤의서재| 앤의서재여성작가클래식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프랑켄슈타인을 읽을 때에 순간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이름을 명명하는 순간 그것은 오로지 그 이름을 명명한 자에게 하나의 의미가 된다.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창조물에게 스스로의 이름을 붙여줬을때 그 창조물은 이름을 가졌다. 그리고 그것은 비극이지만 그에게는 의미였다. 이 세상과 연결 시켜주는 하나의 끈이었다. 하지만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그 명명을 거부했고, 그것을 치욕스러워했으며, 다시 되돌리고 싶어했다. 설상가상 그는 되돌릴 용기조차 없었다. 물론 그것을 없앨 용기는 더더욱 없는 가여운 존재였다.

태어난 존재인 버림받은 프랑켄슈타인은 어떻게해든 살아야했다. 그 자신을 만든 이가 자신을 거부했을때 이미 세상에 버림받은 존재였던 그에게 남은 것은 악의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면서 느끼는 것은 희열보다는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고통을 느끼면서 복수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그 복수는 그 스스로를 향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물로 만드는 주문을 걸면서 말이다.

눈 먼 노인과의 대화에서 비로서 그 자신을 온전히 내보일 용기를 얻은 듯도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에게는 그것도 잠시였다. 받아들여졌다고 느꼈던 곳에서, 모르게 자신의 애정을 표했던 곳에서 그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무서운 괴물이었다. 어쩌겠는가? 그 자신의 창조자는 그를 썩어가는 죽은 자를 통해 드러냈음에...... .

모두에게 고통이다. 두명의 프랑켄슈타인 둘 다에게 말이다. 한 사람은 창조한 고통을 한 사람은 태어난 고통을 겪는다. 창조와 탄생은 언뜻보면 다르나 자세히 보면 닮아있다. 그 둘 모두 고통스럽다는 점이 닮았으며 막상 결과물을 손에 쥐어봐야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다른 이를 만들기 전에 그가 얼마나 결의에 차있었던가? 그가 얼마나 환희에 차 있었던가? 하지만 결과가 드러나자 그는 그 결과물을 똑바로 마주보기도 거부했다. 탄생도 마찬가지다. 고통의 과정을 거쳐서 세상에 나왔지만 그 결과 더 큰 위험, 두려움이 기다리고 있는 꼴이다. 이것이 끝이라고 이것보다 극한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더 큰 낭떠러지가 발 밑에 존재하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전에 읽은 프랑켄슈타인은 창조된 괴물의 비극으로 읽혔지만 다시 읽은 프랑켄슈타인은 존재의 비극으로 보인다. 존재 자체의 비극, 탄생의 비극, 그리고 그것은 창조자의 비극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리고 더 크게 보면 인간 전체의 비극으로도 보인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의 공간을 파괴하고, 서로가 총을 겨누고 전쟁의 소용돌이에 있는 지금 누가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고, 누가 괴물 프랑켄슈타인인가? 그 둘의 모습은 어쩌면 서로 닮아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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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사랑법 - 김동규 철학 산문
김동규 지음 / 사월의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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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철학자가 말하는 삶과 사랑 그리고 역사란 무엇일까? 그 모든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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