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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ㅣ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평점 :
이 책을 받고 처음엔 그냥
시인 정호승 님의
짧고 서정적인 우화소설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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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이 이야기는
내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 하나를
조용히 꺼내 주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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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뭘까?
나는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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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은
운주사 처마에 매달린 작은 풍경
‘푸른툭눈’이
사랑에 대한 의심과 고민 끝에,
현실 너머를 탐험하고자
쇠줄을 끊고 세상 밖으로 떠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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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리기만 하던 존재가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날아오르는 순간,
그 작은 결심이
어쩐지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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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이
조금씩 흐려지는 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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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관계뿐 아니라
어릴 적 선생님 또는
어른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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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달라졌던 걸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
멀어지게 만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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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마음의 변화를
묻지도 않았고,
붙잡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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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척,
상처받지 않은 척,
내가 먼저 거리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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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태연함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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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도
풍경처럼 흔들리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그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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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툭눈은 지리산을 넘고,
섬진강을 지나,
바다를 건너
서울역의 밤까지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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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정 속에서
다양한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
고독과 해방을 마주하며,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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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도,
연금술사도 그랬듯.
끝내는 모든 것이
자기 안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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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도,
생각도.
모든 건
나라는 길 위에서
시작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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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내 마음속 깊은 곳을
가만히 건드리는 문장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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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툭눈이 돌아와
자신을 기다려준 연인에게
건넨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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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툭눈아, 정말 고마워.
혹 내 삶에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건 나 자신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날 사랑하는 너에 의해서 형성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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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랑이 상대를 더 빛나고 아름답게 만들고,
다시 자신도
그렇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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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낳고
매일 눈썹 한 가닥,
보드라운 볼을 만질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에
늘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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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인의 따뜻한 시선과
깊은 사유가 녹아든
한 편의 긴 시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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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와 양장제본으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하지만
무엇보다 내용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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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랑을 잃어본 사람에게,
아니 아직 사랑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조용히 건네는 위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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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사랑을 믿고 싶어졌다.
다시 나를 믿고,
조심스레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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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은
얇아서 금방 읽히지만,
안에 담긴 깊은 울림은
당신의 마음에도
바람처럼 천천히,
그리고 오래도록 스며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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