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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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원하면서도,
그 마음이 들킬까 봐 애써 무심한 척했다.
강한 아이로 보이고 싶어서 거칠게 굴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선을 그으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가까워질수록 더 무서웠다.
‘이 사람도 결국엔 나를 떠나겠지.’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으로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나의 작은 무법자》 속 더치스를 보며,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13살 소녀 더치스 데이 래들리.
스스로를 ‘무법자’라 부르며,
누구도 쉽게 믿지 않고 세상에 가시를 세운다.

태어날 때부터 그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의지할 수 없는 엄마, 어린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삶,
그리고 30년 전 살인 사건의 그림자가 드리운 마을.
더치스에게 세상은 싸워야 하는 곳이었고,
약해지면 모든 것을 잃는 곳이었다.

그녀는 차갑고 날 선 말투로 사람들을 밀어내지만,
점점 그녀를 향해 손을 내미는 이들이 생겨난다.
엄마의 오랜 친구, 마을로 돌아온 살인자,
그리고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려는 할아버지.
처음엔 그들을 밀쳐내던 더치스도
서서히, 마치 물감이 번지듯 세상 속으로 스며든다.

이 책에는 사건이 있고, 비밀이 있으며, 밝혀지는 진실도 있지만
가장 큰 반전은 바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다.

《나의 작은 무법자》는 단순한 범죄 소설의 틀을 넘어,
가족과 상실, 복수와 용서,
그리고 사랑과 소속감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전한다.

처음엔 강한 척하지만, 사실은 너무나 여린 소녀.
더치스가 세상을 밀어내던 손을 천천히 내리는 순간,
독자의 가슴은 조용히 저릿해진다.

어쩌면 우리도 더치스처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세상을 밀어낸 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말한다.
때로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강해져야 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거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더치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세상 속에 녹아들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작가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이 이야기의 여운을 더욱 깊게 만든다.
젊은 시절 강도를 당한 뒤 심한 PTSD를 겪었던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치유했다.
더치스처럼 세상을 거칠게 밀어내며 살아가던 그가,
결국은 이야기를 통해 다시 세상과 연결된 것처럼.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름.
더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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