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편한 편의점 필사집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12월
평점 :
협찬📖 좋아하는 소설이 필사집으로 나온다는 건, 다시 읽는 것보다 한 발 더 깊숙히 책 안에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읽을 땐 위로였고, 쓰는 순간엔 마음의 속도가 조용히 느려지면서 마음이 정리되는 쪽에 더 가까워지더라고요.
⠀
사실 저에게 『불편한 편의점』은 ‘힐링 소설’이라는 말보다 무기력한 시절을 함께 지나온 책이에요. 그때 저는 아이들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면, 정말 집 밖으로 나갈 힘이 없어서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
세상은 계속 돌아가는데 저만 멈춰 있는 기분. 그래도 책만은 멀리하지 않아서 밀리의서재로 이 책을 읽으며 용기가 조금 생겼어요. 대단한 용기 말고, “오늘 하루만은 다시 해보자” 같은 아주 작은 용기요.
⠀
반가운 이번 필사집에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문 페이지는 단연 작가가 추천한 문장인 ‘궤도 수정’이었습니다. 필사집 속 문장에 이렇게 적혀 있거든요.
“이제부터 생각도 행동도 궤도 수정을 해봐.”
⠀
완전히 무너진 날이 아니라 아주 조금 틀어진 날들—피곤함, 조바심, 자책으로 흔들린 날들에 “자책은 말고 방향과 속도를 조정하자” 하고 손잡아주는 문장 같았어요.
⠀
이 부분이 더 깊게 남았던 건 작가의 말 덕분이기도 해요.
⠀
김호연 작가는 독자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고 하죠. “작가님은 언제 어떻게 작가의 꿈을 꾸셨나요?” 그 질문에 늘 딱 부러진 답을 못 했는데, 이번 필사집을 만들며 ‘궤도 수정’을 다시 읽고서야 답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
고등학교 때 문학 선생님이 ‘지금까지의 인생을 정리한 에세이’를 숙제로 내줬고, 작가는 원고지 스무 장을 써서 냈대요. 다음 주 수업 시간, 그 글이 교실에서 낭독되고 박수가 터졌고,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글은 이렇게 쓰는 거란다.”
그리고 그때 ‘나도 글을 쓸 수 있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고, 그 에세이의 제목이 바로 ‘궤도 수정’이었다고요.
⠀
저는 이 대목이 참 좋았어요. 누군가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 딱 그 제목 하나에 담겨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
『불편한 편의점 필사집』은 쓰고 나서 마음을 잠깐 머물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필사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읽고 쓰고 난 뒤의 감정을 메모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천천히 떠올린 생각들’처럼 내 이야기를 적을 수 있는 지면도 마련되어 있어요.
⠀
요즘 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마음이 자꾸 흩어진다거나, 위로는 받았는데 이제는 조금 움직이고 싶다거나, 글을 잘 쓰고 싶다기보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신 분들께 이 필사집을 추천하고 싶어요.
⠀
그때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살아볼 용기”를 아주 작게 다시 배웠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 용기를, 하루의 끝에서 필사라는 방식으로 다시 꺼내는 중입니다.
⠀
⠀
불편한 편의점 필사집
김호연
나무옆의자
2025.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