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지
김안연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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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낸 판타지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그 상상력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기도 하고, 깊은 성찰과 깨달음의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육체적, 정신적 인간의 한계,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펼쳐지는 재미진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깊은 메시지는 현실과 인간 내면의 뒤틀림을 정확히 짚어내면서도 재미라는 달콤함을 입혔기에 식상하지도 않고 어려워서 무시하며 도망치지도 않고 직시하고 깊이 바라보고 생각하도록 이끌어 준다. 그래서 나는 판타지가 좋다. 판타지 동화도 좋고, 판타지 소설도 좋다.

 

이 책 <만월지>에도 그런 메시지가 있다. 금과 과학이 지배하는 상위계급 태상과 과학이 닿지 않아 보존된 자연과 함께 자기 몸으로 갈고 닦은 기술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하층계급 천하의 이분법적 세계는 막대한 재력으로 자신들을 점점 귀족화해가는 재벌들과 자본에 종속되어가는 과학계의 현실을 보여준다. 타고난 신분 때문에, 돈이 없어서 뛰어난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조롱과 멸시를 겪어야 하는 주인공 백터는 우리 주변에서도 한 번쯤 있을 법한 인물 유형이다. 타고나기를 금수저로 타고나 그다지 할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떠받들어지고 좋은 자리에 꽂아 지는 많은 이들은 꼭 황금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안다는 것 빼고는 할줄 아는 것도 없고 타인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 허세에 절어 있는 만월 왕자를 생각나게 한다.

 

이렇게 22세기의 신분제가 엄격한 판타지 세계를 통해 현실을 비춰준다면 등불 시인 매화의 존재와 사랑을 이용해 금화를 얻어 태상 과학원 인공지능 연구원으로 들어가려 한 백터의 비뚤어진 욕망과 후회, 등불시인의 죽음으로 시로 대표되는 감성을 통한 삶에 대한 반성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 없는 세상에서는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 해도 인간의 삶은 온전할 수 없다고 전한다. 과학은 만능이 아니고 감성과 윤리, 인간에 대한 사랑 없는 과학은 인간의 삶에 독이 되고 만다. 아들과 아버지를 죽인 이 교수 집안 이야기, 과학을 위해 사랑하는 이를 죽였지만 죽고 난 다음에 더욱 더 그리워하고 후회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진정한 염원은 현재에 충실하면서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 때에만 그 가치가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시인의 죽음으로 앞므솝이 없어지는 정면상실의 아픔을 겪은 태상은 상실의 시대가 또 오지 않기 위해 시를 가까이 하고 사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만월지에는 금화 대신 등불을 띄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입해 더 좋은 점수, 더 높은 대학, 더 높은 직장을 보고 달려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 아닐까?

 

인공지능과 과학, 과학과 재력을 이기는 등불 시와 사랑이라는 주재가 현실과 판타지, 과학과 감성을 고루 넘나들어 재미와 감동을 주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재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책 중반쯤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백터가 등불시인을 죽이고 사람들이 정면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금화를 훔치기 위해 도둑질이 난무하고, 만월왕자가 몰락해가는 과정이 펼쳐지면서 박진감이 넘치고 속도감이 더해져 작품이 훨씬 재미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많이 아쉬운 점들도 있어서 별 다섯 개를 줄 수는 없었다는 것. 판타지 동화는 모름지기 상상의 세계에서 현실감을 느끼도록 해야 하기에 판타지 세계에 대한 법칙을 촘촘히 짜고 플롯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좋은 판타지 동화는 그 세계를 제대로 묘사하고 그 세계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여 몰입시키도록 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러다 보니  판타지 소설은 자연스래 책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천만년 동안 살아온 태상 왕남 출신 만월왕자 라는 말을 강조하며 천만년을 오랜 세월에 등치시키고 5억 만 년 살아온 천월 왕자라는 것으로 태상의 과학이 생기기 전에 인간에게는 자연과 함께 살며 자기 재주를 뽐내던 원초적 시절이 있었음을, 금과 과학으로 신분이 나눠지기 이전의 평화로운 시절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도 지금의 오랜 세월 지구에 살아온 주인공이 고려와 조선, 일제시대 등 우리 역사를 함께 겪고 그 역사의 모습대로 자기 복식과 모습으 바꿔가며 살았기에 나름대로의 개연성을 가진다. 천만년 동안 스테이크를 먹고, 핸드폰을 들도 다니고, 대저택에서 양복 입고 살았다는 흐르는 세월과 변화를 무시한 채 정지해 버린 태상 세계에 대한 설명은 작품의 개연성을 떨어뜨리고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태상 왕자가 먹는 12첩 반상이라는 묘사도 매번 그대로이다. 왕자가 어마어마한 부자이고 떠받들어진다는 것을 암시하겠지만 매번 반복되는 묘사는 너무 식상하다.

등불시인 매화에 대한 묘사도 그렇다. 차분히 시를 쓰고 나무에 걸터앉기는 하지만 방정맞지는 않는 전통과 세계의 감성을 수호하는 소녀로 그려지는데 만월왕자와 만날 때는 중간중간 너무 방정맞은 대사들과 묘사들이 캐릭터의 일관성을 떨어뜨려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왕자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느라 그랬겠지만 좀더 세심하고 덜 비약적인 묘사들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 만화에서만 볼법 한 호에, 해에, 캑, 스르륵, 샤락, 빠지직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들이 자꾸 걸려 책을 읽어가는 재미를 깎아내렷다. 내가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아 그런지도 모르겠다. 만화와 웹툰에 익숙한 청소년들은 오히려 재미있어 하려나? 중학생 아들이 읽고 나면 뭐라고 하는지 한번 물어볼 일이다.

 

여러 결점들도 있고, 플롯과 묘사가 군대군대 어설픈 감도 있지만 신선한 아이디어와 재미가 있는 판타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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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을 향하여 - 음악을 통하여 존재의 의미를 찾아갔던 10년간의 여정
김성은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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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그림 하나 없고 눈을 끄는 편집 하나 없는 500여 페이지짜리 일기, 양장본이라 들고 다니며 읽기에도 무거운 이 책이 어떤 경로를 거쳐 출판되었을까? 출판사 사람들과 인맥이라도 있을까?

책 마지막에 가서 그 의이 풀렸다. 저자 김성은의 결심과 기획, 추진으로 출판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미워하고 부정하려고만 햇던 자신을 좀더 사랑하고 위해주면서 마음속에 있는 불꽃을 향해 나아가고, 불꽃을 태우며 살아보려는 저자의 몸부림이라는 것을. 워낙 방대한 분량이고 중간중간에 저자가 그토록 극찬햇던 스크랴빈의 <불꽃을 향하여>와 글라주노프의 <사계>를 듣고,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앨렌 그라모의 라흐마니노프와 다른 음반들을 찾아 듣다 보니 읽어가는 속도도 맥없이 느려졌다. 너무 자주 언급되는 자살과 자해, 여러 여자들과 함께 방황했던 시간들은 건너뛰어 볼까도 생각해 봤었다. 읽기 편한 주제들은 아니니까. 그래도 저자의 의도대로 편집 없이 가감 없이, 미스터치가 있는 실황 연주음반을 듣는 느낌으로 저자 김성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았다.

 

스크랴빈의 음악들은 나같은 보통 사람들이 듣기에는 좀 벅찬 느낌도 있었지만 계속 듣다 보면 내 삶을 좀더 업그래이드 시켜야 할것 같은 지적 충동이라고나 할까 미적 충동 같은 것들이 마구마구 느껴져서 좋았다. 음악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고, 존재해야 함의 끈을 놓치 않는 음악가에게는 좀더 고차원적인 것이겠지.

글라주노프의 <사계>를 들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삶을 포기하지 않고 무아지경 같은 환각으 느낀다고도 했는데 나는 아직 러시아 음악이 낯설어서 그런지 그토록 깊이 와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곡에 대해 극찬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언뜻언뜻 느껴갈수 있는 저자를 보며 참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내 가족에 대한 애착은 그들에게 무언가 보답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죄책감이 가미된 의무감적인 삶의 에너지를 주어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릴수 없는 상황이 많지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음악이든 그림이든 아니면 단순한 취미든 무엇인가가 나를 해옥하게 해줄수 있다면 한 인간에게 삶은 좀더 자유로운 행복을 선사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가를 즐기고 건전한 취미를 가져보라고들 하겠지.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옆에 있는 친구가 행복해하는 것 같아 가끔씩 이 음악을 들어볼 생각이다. 그 행복이 나에게도 조금씩 느껴진다면 넉넉치 않고 정신 없어서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어서 멍하니 주저앉고 싶을 때 나에게도 위로가 조금은 위로가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저자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책에 대한 이야기, 우리 역사와 정치 현실에 대한 이야기, 예술 일반에 대한 이야기가 더 쏙쏙 들어왔다. 너무 예뻐서 외모가 음악적 업적을 가리는 악조건을 극복하고 뛰어난 성과를 이뤄낸 김성은의 여신(이제는 아닌가?) 앨렌 그리모와 다른 여자 음악가들, 여배우들, 여가수들에 대한 문제의식은 같은 여자 입장에서 참 좋은 지적이었다. 그리고 앨런 그리모의 ,특별수업>을 너무도 극찬했기에, 나도 이 피아니스트를 너무 좋아하기에 그의 책을 읽고 싶어 찾아봤는데 우리에게 번역된 책이 없어 안타까웠다. 이 참에 저자가 이 책을 번역해 출판해 보면 어떨까? 내가 보기에 그만한 문장 실력도 되는것 같은데.

동서 냉전, 남북분단상황에 희생된 뛰어난 음악가 윤이상에 대한 재조명과 북한 음악가들에 대한 재평가, 서양의 소리에 동양을 담아낸 절묘한 음악이라는 윤이상 음악에 대한 평가 역시 인상적이었다.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가 그의 전기를 출간했는데 외국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한동안 잊고 지낸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프랑수아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사라트르의 <구토>는 참 반가웠다. 연주자가 단순히 악기를 기계적으로 누르는 사람이 아닌 이상 악보에 근거해 자신의 철학과 작곡가의 철학을 결합한 새로운 해석을 창조하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해석을 위해서는 세계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그 도구가 되는 것들이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 문학, 역사이니 연주자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수 과목이 아닐까? 그가 말하는 작곡가, 연주자, 편곡자, 음반 이야기만큼이나 그가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고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가는 것은 정마로 힘들었다. 기왕 많은 사람들에게 내보이기로 했다면 편집을 조금 더 신경쓰고 분량을 100여 페이지 정도라도 줄여서 독자를 고려해주었으며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얼마 전 천재적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동생 테오 반 고흐의 생애를 추적한 책을 읽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서 자살 시도도 하고 자기 귀도 자르느 등 힘든 삶을 살아가는 형에게 동생 테오가 한 말이 있다.

위대한 예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형이 겪엇을 정신적 고양 상태를 생각하면, 그 때문에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겪어야 햇을 고통을 생각하면 아찔해진다고, 형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 편지였다.

 

부모님의 헌신적 뒷바라지에 비해 이뤄낸 것이 없어 죄책감이 물밀듯 밀려오고 앞날이 걱정되어 막막하고, 예민하고 상처받은 감성 때문에 세상살이가 쉽지 않은 김성은 작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앞으로는 올바르게 살아라 라고 말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 무엇이 올바른 삶이고, 그가 겪는 고통이 어느만큼인지 나는 어림짐작 이상 다가갈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과 없다고 자기를 탓하지 말고 음악을 사랑하며 그 속에서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남들보다 예민하고 여려서 힘들지 내가 못나서 힘든게 아니니 절대 자기를 탓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 책을 통해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의 삶으 응원할수 있는 책이었고 음악과 책에 대한 새로운 구금증과 탐구의 길을 열어준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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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백수로 있을게 - 하고 싶은 게 많고, 뭘 해야 좋을지 몰라서
하지혜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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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만 나오면 취직 잘 되던 때가 있었다. 먼 이야기다.

사대문 안에 있는 대학 나오면 취직 잘 되던 때가 있었다. 멀지만 조금 더 가까운 이야기다.

스카이 나오면 취직 고민 안 해도 되던 때가 있었다. 지금보다 멀지만 좀 더 많이 가까운 이야기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스카이도 모자라 석사와 박사 학위가 필요하고 각종 스펙이 필요해졌다. 그걸 해 놓고도 불안하다.

대학 가는데도 시험 한 번, 논술 한번이 아니라 각종 스펙이 필요했다. 나름대로 괜찮은 대학을 나왔지만 지금 이 제도로 다시 도전하라고 하면 도저히 못할 만큼 해야할 것 많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입시제도이다.

그러니 학생들이 어디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생각할 틈이라도 있겠나 싶다. 바둥대지 않으면 기회마저 박탈당할거라고 옆에서 들들 볶아대는데.

 

해야할것 많은 자식이 안스럽고 이 모든걸 잘 해내서 좀더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부모 마음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 쌓도록 사회생화, 사생활, 마음 갈무리는 부모가 대신해 준다. 그러니 겨우겨우 직장 잡아 출발하는 사회에서 견뎌내고 치유하고 치열함을 뚫고 소통해 내는 법 역시 배울수 없이 커야 했다. 그런 이들이 지금의 청춘들 아닐까 싶다. 공부에만 견디면 다른 것들은 견뎌야할 것이 있고 견뎌야 한다는 의식 자체도 없을것 같다.

 

그러니 앞만 보고 달려왓고 주변의 시선과 환상에 사로잡혀 방송쟁이를 꿈꾼 자기고백자 하지혜를 누가 탓하고 움츠러들게 할수 잇을 것인가1 앞만 보고 대학에 골인하면 다 되고 스펙만 쌓으면 다 되니 딴생각 하지 말고 달려가자고 부추긴 것은 우리 교육제도와 기성세대들 아니겟는가!

학생 때 멈춰서서 환상과 실재를 구별해 내려 노력하고 자기를 들여다보아야 했다는 자기고백이 왠지 그들만의 문제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언젠가 사회에 나가고 백수가 될지도 모를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라서 그럴 것이다.

 

이제라도 멈춰서서 자기 길을 찾아 해매고 남과 함께 걷고, 공동체를 들여다보려 노력하는 백수는 참으로 자기를 배우는 공부하는 인간이다. 고미숙이 말햇듯이 인간은 공부하는 사람, 호모 쿵푸스라고 하지 않던가! 소림사에서 수십년 자기 연마를 하는 것이 쿵푸이고 그것을 우리는 공부라는 말이란 사실이 참말로 충격이었다. 대임과 공부, 시험과 점수가 공부인줄 알았는데 말이다.

 

늘 하고 사는 생각이지만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멈춰서 멍때리는 시간을 주고 뒹굴거리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며 절감한다. 그래야 내가 진짜 원하는 것,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재미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볼수 있기 때문이다.

진로고민은 직업만 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 제 밥벌이를 하며 사는 직업을 가져야 하기에 밥벌이 궁리는 해야 하지만 밥벌이와는 별개로 나는 인생을 어떤 취미, 어떤 활동, 어떤 관계로 채우며 재미있고 행복하게 만들 것인가를 총체적으로 고민하는 것 또한 진로고민이라고 배웠다.

기와 시작한 백수 하지혜가 이 고민을 얼른 끝내고 다시 자기 길을 가도록 응원을 보낸다. 진심으로.

그러려면 미안함과 고마움은 안고 살되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멋진 커밍아웃을 하는 이라면 충분히 그럴수 있겟지!

다음에는 멋진 백수 탈출기 아니면 새로운 길에서 같은 책으로 만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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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바위 게임 - 불평등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마이클 슈왈비 지음, 노정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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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때 신분제 사회였던 때가 있었다. 노비의 자식은 노비가 되었고, <동의보감>을 쓴 허준 같은 출중한 능력을 가진 이도 반쪽짜리 양반인 중인이었기에 능력과 상관없이 차별받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며 많은 어른들이 말한다. 능력만 있으면 교육 받아서 부모는 험한 뱃일하고 가난하게 살지언정 자식은 판사도 되고 의사도 될수 있는 세상이라고. 머리 나쁘고 게을러서 그렇지 다 될수 있다고.

이런 말을 듣는 공부 못해 별 볼이 없는 월급쟁이로 근근이 살아가는 자식들은 속이 쓰리다. 자기가 못나서 그렇다고 인정은 하지만 왠지 게운치 않다.

 

이 책 <야바위 게임>은 이런 말을 듣는 우리네가, 죽어라 공부햇어도 백수 신세가 많은 청년들이 왜 게운치 않은지 설명해주는 책이다.

 

멀리서 관찰해 보면 속임수라는 것을 알지만 온갖 현란한 말과 등떠미는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속아 시장통의 야바위 게임판에 돈을 걸었다 홀랑 날리는 것이 비단 나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 게임을 어떤 조작도 없는 운빨과 잘 보기만 하면 알수 있는 개인의 눈썰미만 있으면 돈을 딸수 있다고 속이지만 교묘하게 사람 눈을 속이는 야바위꾼에게 당해낼 재간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너나 나나 다 학원 보내고 따야 할 스펙도 많은 교육 전쟁에서 승리하는 건 학생 혼자 잘나서 되는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간혹 그럴 수도 있었지만 요즘은 사교육 한번 안 받고 좋은 대학 들어가기는 영 쉽지 않다. 대학 들어가도 그렇다. 옛날에는 아르바이트하며 좋은 학점 딸 수도 있었다지만 요즘은 교수가 내주는 과제를 제대로 다 해내려면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도 모자라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기에 취직하려고 따야 하는 각종 스펙도 해결해야 하고.

 

교육 환경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사회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60년대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공부 못하는 건 다 네 탓이라고, 남탓하지 말라고. 각종 언론과 교육계 등 이데올로기를 생성해 내는 가진 자들이 자기네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입시제도를 복잡하게 바꾸고 투입해야 하는 자본의 양을 늘리고, 각종 인맥을 동원하여 자기네들끼리 좋은 일자리를 나눠먹는 불평등한 게임의 규칙을 감추기 위해 불평등한 규칙의 중요성을 깎아내리고 보지 못하게 하려고 착취당하는 대중을 세뇌시킨 것이다.

 

이 책을 제대로 읽으면 지금의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해 이런 해석을 할수 있게 된다.

교육문제 뿐만이 아니다.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명목으로 이윤이 남는데도 임금을 동결하는 기업주들,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비정규직을 늘려간 노동제도,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성역할의 고착화도 대자본가와 기득권 남성들의 자기 권력 유지를 위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들여다볼수 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면서 우리가 불변이라고 또는 최선이라고 믿었던 여러가지 법과 제도, 도덕적 이데올로기가 사실은 기득권층들의 불평등 유지 전략에 불과햇으며, 그렇기 때문에 좀더 평등한 방향으로 바꿀수 있고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슈월비가 말하는 게임의 규칙은 바꿀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

 

기득권층은 폭력과 구금 등 물리적 억압은 대중을 다스리는데 한계가 있는데다 오래 가지도 못하기 때문에 대중이 자발적으로 그들이 만든 게임의 규칙에 순응하며 스스로 유지해 나가며 나아가 재생산하도록 만든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조금이나마 이익을 나눠주어 규칙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현명한지를 알려주며 서로 단결하여 규칙을 바꾸는 음모를 꾸미지 못하도록 인종과 성별, 경제적 계층 등으로 대중을 조각조각 분열시키기도 한다.

그 중에 제일 무서운 것이 아마도 상상력의 결핍과 한계를 통해 대중들이 다른 대안은 없다고 스스로를 현 체제의 감옥에 가두고 패배의식을 심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상태라면 스포츠와 가정, 자기 노동에 매몰되어 사회의 불평등한 규칙을 쉽게 잊을테니까.

 

책 속에서 이런 대목과 마주하자니 모골이 송연해 진다. 잘못된 법도 군홧발을 앞세운 독제도 무섭지만 언론과 오랜 세월 동안 이루어진 잘못된 교육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더 무섭다는 것을 확실이 깨닫는 대목이었다. 1퍼센트가 99퍼센트를 먹여살린다는 세놔에 속아 대기업에게 무조건 잘해주어야 한다는 굳건한 믿음,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부자 돼서 다 잘될거라는 믿음이 대기업 지상주의와 탄핵 정국까지 불러오게 했겠지? 이제는 절대로 속지 말아야지.

 

그리고 결심해 본다. 나는 최대한 많이 읽고 소통하며 내 상상력의 범위를 넓혀나가야지. 사교육이 무너지지 않을거라는 믿음 대신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 어떤 상상을 해야 하지? 부자가 안 되더라도 행복하게 살수 있고 노후걱정, 의료비 걱정 없이 살수 있는 세상이 불가능할거라는 상상의 한계도 뛰어넘어 새로운 꿈을 꿔봐야지.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가며 아이를 키울수 있도록 누구 한 사람은 아이가 커가는 미성년 시기에는 집에 있으면 좋겠어. 그래도 경력 단절, 생활비 부족으로 쪼들리면 안될텐데, 여자만 집에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을텐데, 그런 세상을 상상해봐야지.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지금 있는 불평등의 규칙을 찾고 조금이라도 평등하게 바꾸려는 노력을 해봐야지.

 

지금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밑줄도 긋고,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주는 책은 참말로 좋은 책이다. 3월에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이 그런 득템한 책이다. 함께 읽고 나눌 이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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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그리고 테오 - 반 고흐 형제 이야기
데보라 하일리그먼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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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다 보면 어느 소설보다 재미있다. 한 시대를 최선을 ㅏ해 살아낸 인물을 보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생생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낼까 싶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눈물 찔끔, 가끔은 분노에 손을 부르르 떨기도 하니 왠만한 소설책보다 재미있었다. 

 

<빈센트 그리고 테오>의 책장을 넘겨가다 보노라면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와 테오 반 고흐의 편지들, 그들이 주변 사람들과 나눈 편지들을 바탕으로 위대한 화가와 그 화가를 있게 한  동생의 삶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내려 했다는 역사학자적, 또는 다큐맨타리 작가 같은,또는 진실을 추적하는 기자 같은 집념을 본다.

 

 편지나 주변의 증언이 없는 사건들 앞에서는 철저히 중립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고흐가 아를에서 고갱과 다투고 자신의 귀를 잘라 ㄹ이첼이라는 창녀에게 보관하도록 한 사건에서는 고갱의 일방적 증언이라는 점을 밝히며 사건을 서술하면서도 다른 가능성들을 싣고, 이것들은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라고까지 밝힌다.

이런 사실에 대한 탐구가 있기에 이 책이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를 가장 잘 조명한 논픽션이라는 찬사를 받는게 아닐까?

 

절데되고 중립적인 작가의 관찰과 복원에 더해 이 책에는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 적제 적소에 자기 얘기가 아닌 주인공들의 편지를 인용한 대목들을 통해 빈센트와 테오의  삶에 깊이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는 작 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어느 소설보다도 더 풍부한 감성을 표현하려는 절제된 문장과 군더더기 없는 사건 전개, 다음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은 독자의 조바심을 자아내는 사건 서술과 잘 짜여진 플롯은 500여 페이지의 두꺼운 책도 거뜬히 읽어내게 하는 밀도 높은 몰입성을 유지하게 한다.

이 책을 문학성 높은 평전이라고 한들, 인간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한 명작 소설이라고 한들 한 치ㅊ의 모자람도 없는 책이다.

 

 

빈센트는 살아 생전 세상이 그 천재성을 충분히 알아주지 못하고 불운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그래 도 그는 행운아였다.

처음에야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자식된 도리로,형제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떠맡은 짐이었던 빈센트에 대한 지원은 나중에는 형의 예술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꽃피워주고 싶어하는 진정성으로 나아간다. 미술상을 하면서 테오 자신도 남의 그림을 파는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를 꿈꾸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그런 재능도 없고,그만ㅌ한 감수성도 없다고 생각하며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형을 통해 자신의 이같은 욕망도 실현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테오의 편지에서 '형이 이만한 경지에 이루기 위해 민감한 감수성으로 얼마나 높은 ㅕㅇ지ㅁ에 올라갔고, 그 감수성과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싸우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는지를 ㅅ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하는 부분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무리 기꺼이 주려 해도 받는 사람이 그것을 늘 당연시하며 고마워할줄 모르면 주는 것은 한두번으로 그치고 만다. 꿈 참고 주고 주고 주더라도 그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로 이어지지 않고 상대를 원망의 대상으로, 억지로 지고 가야할 짐으로 여기게 되어 마지막에는 관계는 틀어지고야 만다.

빈센트와 테오가 마지막까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수 있었던 것은 빈센트가 자신에게 배풀어주는 테오의 무한한 물질적 지원과 자기 예술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에 대해 늘 고마워하고 감사했으며 테오의 일에, 가정에 어떤 도움이라도 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동생에게 방해되지 않으려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끝내 스스로 동생을 부르지 않으려 했다. 물론 빈센트가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성숙하지는 않았고, 테오 역시도 빈센트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깊지도 않았엇다. 작가는 두 형제가 삶의 무개가 더해지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서서히 물들어 가는 과정을 잔잔한 물결이 어느 순간 내가 서 있는 호숫가 내 발에 닿아 나를 적시듯 그들 삶의 그 속도대로 그려나간다. 그래서 우리도 처음에는 테오에게 기울어져 있던 형의 삶을 짊어지고 힘겹게 걸어가는 동생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두 형제의 진정한 형제애에 대한 감동과 믿음으로, 그리고 아찔한 정신적 위태로움과 너무 민감해서 삶과 부딛히는 빈센트의 힘겨운 삶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시점을 옮겨갈 수 있다.

 

그리고 남편을 지극히 사랑했고,남편의 일부를 이룬 빈센트의 예술세계를 끝까지 지켜내려 했던 테오의 아내 요한나를 보며 두 형제가 누린 고달픈 삶을 하늘이 보상해주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ㅁㄱ낀다. 형제는 그렇다 쳐도 짧지 않은 결혼 생활 동안 만난 남편과 남편이 사랑한 형의 예술세계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도 아니고 흔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 예술가가 그린 작품의 목록을 알고, 그가 어디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안다는 것은 중요하고 우ㅁ리 삶의 품격을 높여주는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예술가가 가족과 사회, 주변인들과 맞으며 갈등하고 기뻐하며 자기 작품에 사연을 담는 내밀한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작품을 감상하 고, 그가 어느 파에 속하는지를 아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이다.한 인간의 고뇌와 사랑을 통해 우리 삶을 들여다보고 내가 주변인과 관계맺는 방식과 사회와 관게맺고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을 조망하고 나를 더 성숙하고 나은 삶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진정한 삶의 품격을 높여준다고나 할까.

 

내게 이 책은 내 가족과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해 주었다. 감성과 정샌이 펄펄 살아있으면섣ㅎ 사회와 가족과 행복하게 잘 지낼수는 없을까? 우리 주변에 빈센트 같은 감성이  예술적 정신이 펄펄 살아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포용하고, 올바른 이웃으로 살게 할수 있을 것인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을 알려주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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